준법신뢰위 권고 무시한 카카오, 쇄신은 말로만[현장기자]

입력 2024-04-05 00:03

카카오는 지난해 12월 본사와 계열사들의 준법경영을 지원하는 독립기구인 ‘준법과 신뢰위원회(준신위)’를 출범시켰다. 카카오 그룹과 경영진들의 사법 리스크가 연이어 불거지자 외부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직접 만든 조직이다. 김 창업자는 준신위를 통해 카카오를 환골탈태시키겠다고 강조했다. 한동안 준신위는 ‘카카오 쇄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카카오는 준신위에 대한 사회적 믿음을 스스로 거둬들였다. 지난 1일 준신위가 평판 리스크를 우려하며 사실상 반대했던 인사를 카카오가 중용한 것이다. 준신위는 지난달 14일 카카오가 정규돈 전 카카오뱅크 CTO를 신임 CTO로 내정하자 “신규 경영진 선임 논란과 관련해 개선 방안을 수립하라”라고 권고했다. 이에 카카오는 “새 리더십이 사회의 눈높이에 맞춰 잘 나아갈 수 있도록 점검하겠다”고 답했다.

정 CTO는 카카오 그룹 경영진이 비난을 받은 이른바 ‘먹튀’ 논란의 시발점이었다. 그는 카카오뱅크 상장 3거래일 만에 보유주식 대부분을 팔아치우면서 약 66억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이후 카카오뱅크 경영진이 줄줄이 스톡옵션 행사에 나섰고, 연이어 카카오페이 임원들도 차익실현에 나서면서 도덕성 논란을 키웠다.

이번 인사는 ‘카카오 쇄신’의 또 다른 상징으로 여겨지는 정신아 신임 대표의 의지로 전해진다. 카카오는 정 CTO가 스톡옵션 행사 당시에는 먹튀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던 터라 오히려 억울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하지만 ‘준신위 패싱’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인사로 카카오의 쇄신은 국민 눈높이에 미흡하다는 게 입증됐다. 내부에서조차 스스로 만든 견제 기구의 비판마저 수용하지 않는데 진정한 쇄신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카카오를 ‘성인 몸을 가진 유치원생’이라고 비유한다. 성장한 기업 덩치에 맞게 합리적인 비판을 고집불통으로 대하지 않고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카카오 내부의 변화를 보고 싶다.

전성필 산업1부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