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254개 지역구에서 후보들이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600여명이 저마다 꺼내든 약속은 선거 공보에 담겨 유권자에게 전달됐다. 시민단체에서 그것을 분석했더니 몇 가지 특징이 추려졌다. ①선거 때마다 늘 등장하던 공약이 대다수였다. 도로를 지하화한다거나 그린벨트를 풀겠다는 식의 단골 레퍼토리가 반복됐다. ②무슨 돈으로 그런 일을 할 건지, 복안을 가진 후보는 별로 없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후보들에게 공약의 재원을 물었는데, 구체적인 조달 계획을 밝힌 사람은 채 30%가 되지 않았다. ③미래를 말하는 후보가 극히 드물었다. 시시각각 닥쳐오는 기후 위기, 세계 최하위 저출생 인구 위기, 초고령화 시대의 노후 문제, 극심한 불균형의 지방 소멸 위기 등 우리가 서둘러 의제에 올려놓고 대책을 찾아야 할 문제가 후보들의 공약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국 유권자 가정마다 배달된 선거 공보에는 한국 정치의 수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경실련은 4일 총선 후보들의 공약을 유형별로 분류해 ‘개발 공약’만 세어보니 2200개가 넘었다고 밝혔다. 후보 1인당 평균 3.7건의 개발 사업을 꺼냈다. 철도나 도로 관련 공약을 제시한 후보는 181명이나 됐고, 그린벨트·상수원·고밀도 개발은 무려 196명이 약속했다. 공항을 새로 짓겠다는 후보도 47명이었다. 철로를 깔겠다, 길을 내겠다, 건물을 짓겠다는 1960~70년대 개발도상국 시절의 공약을 21세기에 여전히 들이밀며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 일부가 밝혔다는 재원은 국가재정이나 지방재정을 활용한다는 원론적 수준에 그쳤고, 경실련 자체 분석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된 사업은 36%에 불과했다고 한다. 기후 관련 시민단체들도 선거 공보를 분석했는데, 지역구 후보 중 기후 문제를 공약에서 언급한 이는 24%밖에 되지 않았다. 기후, 인구, 지방 등 미래 한국이 당면한 문제들은 거시적 접근 못지않게 지역 단위에서 실행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이번 총선에서 철저히 소외돼 버렸다.
엉망인 공천 탓에 후보 자질 논란이 유독 많은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그 난맥상을 입증하듯 후보들의 공약마저 구태의연한 ‘묻지 마’ 개발 사업, 선심성 사업들로 채워졌다. 이런 이들이 국회에 들어가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입법에 나설 리 만무하다. 유권자들이 바로 지금 옥석을 제대로 가려야 한다. 수준 이하의 공약을 꺼낸 이들을 과감히 걸러내야 국회의 수준을 최소한이라도 담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