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사명 중 하나로 해외 선교가 꼽히지만 이를 실천하는 교회는 많지 않다. ‘교회가 조금만 더 부흥하면’ ‘재정이 조금만 더 안정되면’ 하는 생각으로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주요 교단 중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총회도 산하 1만1000여 교회 중 교단을 통해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600여개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 양정교회(박재신 목사)는 특별하다. 양정교회는 ‘선교를 위해 설립된 교회’다. 모든 재정과 성도들의 헌신, 사역 계획을 선교에 쏟고 있다. 지난 달 29일 교회에서 만난 박재신(64) 목사는 “최근 교회들이 ‘살아남기’에 집중하느라 선교를 뒷전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은데 교회는 하나님이 살려주시는 것”이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다 보면 교회가 부흥한다. 양정교회가 그 증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목사가 1986년 세운 양정교회는 개척 직후부터 교회 재정을 선교에 우선 사용하도록 정관에 명시했고 현재 30% 이상을 선교에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국내 미자립교회를 돕는 일부터 시작했고 나중에는 해외 선교로 눈을 돌렸다. 지금은 13개 가정 24명을 선교사로 파송해 예장합동 총회 세계선교부(GMS)에서 세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됐다. 뿐만 아니라 성도의 가정에서 시작했던 교회가 날로 부흥해 지금은 청장년 1000여명, 교회학교 400여명이 모이는 어엿한 중형교회로 성장했다. 이 모든 것은 가장 어둡고 어려운 곳에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보내야 겠다는 그의 목회 철학에서 출발했다.
아골 골짝에 복음 들고 가는 마음
충남 서산 출신인 박 목사는 중학교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평생을 ‘하나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서원했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가정의 8남매 중 장남인 그가 가정을 돌보며 살길 바랐지만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경북 김천 용문산기도원에서 숙식을 제공하며 신학을 가르친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찾아갔다. 나운몽(1914~2009) 목사가 세운 용문산기도원은 한국교회 성령 운동의 발원지였다. 나 목사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가르침을 들으며 고등성경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 한국성서대학교에 입학해 개혁주의 신학을 배웠으며 휴학 중 전주 수양산기도원에서 봉사하다가 전북 진안 월포교회에 부임했다. 스물 네살 젊은 전도사는 시골교회를 70~80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부흥시켰다.
당시 그의 목회 철학은 찬송가 323장에 있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가장 어둡고 어려운 곳에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전북 전주에서 목회자를 기다리던 일곱 가정이 모인 곳에 부임했다. 그가 직접 나무로 강대상을 만들고 목양실을 꾸미는 등 하나하나 세워가던 교회였다. 성도 50~60명이 모이게 됐을 무렵 그가 제직회에서 말했다. “이제 어려운 교회와 이웃들을 찾아가 섬기고 복음을 전해야겠습니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아직 개척교회일 뿐인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하나요.”
선교 비전에 대한 좌절, 사람에 대한 실망, 그리고 그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설교를 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캄캄한 밤에 홀로 떠 있는 조각배 같은 심정이었죠. 기도원을 찾아갔는데 기도가 나오지도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럴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는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사람
1986년 박 목사는 한 성도의 가정에서 양정교회를 시작했다. 교회를 시작할 때 그의 새로운 다짐은 ‘아골 골짝으로 사람을 보내자’는 것이었다.
“아골 골짝을 내가 가려면 한 곳밖에 못 가지만 그곳에 갈 사람을 키우면 10곳, 100곳도 갈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을 다 퍼주면서 선교에 ‘올인’하는 교회를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목회가 목적이 아니라 선교가 목적이었죠. 오죽하면 ‘박 목사는 선교에 미쳤다’는 말까지 들었을까요.”
7년 만에 1호 선교사를 파송하던 날은 감동의 연속이었다. 싱가포르에서 2년간 신학을 공부시키고 중국으로 보냈다. 성도들에게는 ‘선교사는 우리가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라고 가르쳤다.
“예수님을 만난 우리 모두는 선교 명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선교사들은 내가 가야 할 곳을 대신 가 준 사람인 거죠. 우리 교회는 선교사의 선교 보고나 전도 숫자로 그들을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나의 사명을 대신 이뤄주도록 돕는 거죠.”
교회가 오직 복음 전파라는 본질만을 추구한다는 소문이 나자 성도들이 점차 늘어났다. 예배당을 두 차례 건축했고 코로나19 기간에는 교육관도 새로 지었다. 건축 중에도 선교를 우선해 매년 선교비를 7억원 이상 사용했다.
일 년에 두 차례 여는 선교바자회는 양정교회의 대표적인 사역이다. 성도들이 음식을 만들며 교제하고 판매 금액을 모두 선교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박 목사는 “화목하면 하나가 되고 일치하면 힘이 생긴다. 그리고 그 힘으로 선교하는 것”이라며 “성도들에게 ‘꼬리 내리는 훈련’을 늘 강조한다. 양보하고 져주는 게 십자가의 원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목사는 은퇴 후 양정예수마을 건립을 꿈꾸고 있다. 최근 40여년 역사를 가진 기도원을 기증받았다. 이곳을 갈 곳 없는 은퇴 선교사들이 함께 살며 여생을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곳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성도가 교회를 열심히 섬기면 교회는 성도들과 함께 선교해야 합니다. 복음이 없는 음부와의 싸움에서 하나님은 승리를 약속하셨고 우리는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교회가 편리함과 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춰 이 본질을 잊고 있는건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한국교회를 살려주십니다.”
양정교회와 박재신 목사는
양정교회는 양의 우물(羊井) 이라는 뜻으로 예수님이 자신의 양 떼에 생명의 꼴과 물을 먹이고 쉼을 주는 장소라는 의미다. 양정교회는 그 이름 그대로 생수가 넘치는 교회, 주님이 목자가 되시는 교회, 누구든지 들어와서 쉬고 주님이 공급하시는 영혼의 생수를 마실 수 있는 교회를 꿈꾸고 있다.
‘참 빛 예수, 빛으로 전하고 삶으로 전하자’를 교회 영구표어로 삼고 무엇보다 선교에 매진하고 있다. 13가정의 선교사를 파송했으며 29명의 선교사를 후원하고 있다.
담임 박재신 목사는 성서대학을 수료하고 기독신학교 전북신학교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총신대 목회대학원 목회학석사를 받고 한양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을 전공했으며 필리핀 라살 아라네타대에서 교육 경영학 박사(Ph. D)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북전주노회 노회장, 총회 교육부장, 총회 세계선교회(GMS) 부이사장, 총회 회록서기 등을 역임했다. 현재 태국교회설립선교회(CPWM) 회장, 쿤밍한국국제학교 이사장, 전북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GMS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주=글·사진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