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되니 어딜 가나 정치 얘기다. 직업이 기자인 사람이 그런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할 수 있는 말은 주장인가, 사실 전달인가. 전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할 뿐이다. 비판이든 방어든 이미 수두룩 나와 있는 몇 가지 패턴의 진술 중 하나를 벗어나기 어렵다. 이런 동어반복은 망망대해에 소금을 뿌리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줌을 뿌리든 한 트럭을 쏟아붓든 이미 소금기로 가득한 바다의 무엇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기자도 그렇게 말하던데’ 정도가 될까. 사석에서 벌어진 정치 대화에서 각자 입장을 다투는 ‘주장’의 영역에 들어간다면 기자도 똑같이 분통을 터뜨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한 사람의 평범한 화자에 불과하다. 세상일에 훈계하는 기자라고 스스로 그 이상의 권위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기자가 할 수 있는 정치 얘기가 사실 전달이라면 나는 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정치부 기자를 해본 적이 없으니 이렇더라 저렇더라 할 거리가 없다. 기자라면 어느 부서에 있든 각자의 일로 정치인이나 그들의 보좌진을 만나거나 취재하기는 하지만 정치 행위 자체를 다루는 정치부 기자와는 접근 각도가 다르다. 사회부 기자일 때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오른 국회의원들에게 전화해 입장을 물은 적이 있다. 국회에서 많은 기자를 일상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이라 청산유수 같은 해명을 예상했는데 수화기 너머에서는 하나같이 긴장한 목소리로 최소한의 대답만 간신히 넘어왔다. 1년 차 기자 땐 여당 중진의원이 자기 지역구에 특목고를 끌어오려고 힘을 쓰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 당사자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쎈캐(센 캐릭터)’로 꼽히던 그 역시 펄쩍 뛸 거라는 예상과 달리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정치 담당이 아닌 기자가 취재로 정치인과 주고받게 되는 대화의 주제는 단편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판 돌아가는 얘기를 들으려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논란거리가 될 만한 특정 사안에 대해 입장을 요구하는 식이니 정치인들도 아마 달갑지 않을 것이다. 가끔 특별한 이슈 없이 식사 자리 등에서 정치인을 대면하는 일도 있지만 그 몇 번의 대화와 인상만으로 정치나 정치인에 대해 잘 알게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많은 다른 부서 기자가 선거철처럼 정쟁이 뜨거운 시기가 되면 뭔가 똑 부러지는 관전평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하며 정치부 기자에게 묻는데, 답하는 쪽도 사실 위주로 겨우 말할 뿐이다. 요즘 같은 선거철에 정치부 기자에게 가장 흔하게 던지는 질문은 ‘누가 이길 것 같으냐’가 아닐까 한다. 부동산 시장을 담당하는 나로서 이 질문은 ‘집값이 어떻게 될 거 같으냐’고 묻는 것과 같다. 양쪽 다 대답은 ‘모르겠다’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게 사실이다.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에서 정치 얘기에 불이 붙으면 나는 주로 듣는 쪽이 된다. 모두가 논객이 돼 버린 대화는 끝이 늘 공허한 탓이다. 공터에 모여 제각각 소리만 지르고 돌아가는 것 같달까. 다시 봐야 하는 이해관계가 없는 사이라면 대의도 없는 언쟁 때문에 서로를 잃기도 한다. 그래서 과열된다 싶으면 화제를 돌려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다시 돌아오는 게 정치 얘기다. 그 기능 중 하나가 배설이라고도 의미 부여를 해보지만, 경쟁적 배설이 남기는 건 난장판이다. 정치 얘기란 대부분이 각자의 주장이다. 정치적 입장에서 나오는 모든 주장의 최종 목표는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지만 그 바람이 달성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오랜 경험으로 안다. 애초 유권자가 할 일은 정치인들을 기준으로 편을 갈라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 국민을 갈라놓는 정치인들을 함께 꾸짖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강창욱 산업2부 차장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