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48) 작가는 ‘세월호 농성장 사람들’이다. 2014년 여름부터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에서 시민들의 서명을 받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래서 서명받는 데 선수다. 그는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은 힘세고 멋지다”고 말하는 “열렬한 전장연 팬”이다. “장애인해방운동에 대해서, 장애운동의 열사들에 대해서 그때 처음 배웠다. 학교 수업에서 장애의 역사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기륭전자 해고 노동자들은 그에게 ‘기륭언니들’이다. 대법원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30억원 손해배상 청구를 파기환송해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을 때가 그에겐 “2022년 한 해 중에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 2023년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최종후보에 올랐던 ‘저주토끼’ 작가로 유명한 정보라에겐 ‘데모하는 작가’라는 별명이 있다. 그는 내는 책마다 ‘작가의 말’을 “투쟁”이라는 단어로 마무리하는 작가다. 급기야 데모 이야기를 담은 ‘아무튼, 데모’를 자신의 첫 산문집으로 내놓았다.
정보라는 이 책에서 특유의 경쾌하고 솔직한 문체로 데모 이력을 풀어놓는다. 그는 서명을 받고, 행진을 하고, 1인 시위를 하고, 오체투지를 하고, 무엇보다 싸우는 사람들의 옆자리에 앉는다.
“무지개 동지들은 쌍차 동지들과 함께 더위와 소음 속에 앉아 있으려고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고 무지개 동지들이 아주 유별난 무슨 활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앉아 있었을 뿐이다.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연대의 표현인지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는 광화문광장에서 잠을 자고, 국회 본청 계단에 앉아 밤을 샜다. 단식 중이던 세월호 유족 유민 아버지가 세종대로 한복판에 드러누웠을 땐 따라 나가서 그의 머리맡에 앉았다. 그는 배를 땅에 댔다가 일어나서 몇 걸음 걷는 오체투지 시위에 수차례 참여했다. 부커상 후보에 올라 스타 작가가 된 후에도 2022년 12월 ‘노란봉투법’ 제정 촉구 오체투지에 참가했다. 그는 “점심시간 제외하고 거의 일곱 시간 동안 8.9㎞ 오체투지를 완주(!)했다”며 마라톤 완주를 해낸 것처럼 자랑스러워했다.
정보라는 지난 10년간 출근 도장 찍듯 데모 현장에 나갔고, 퇴근길에 시위 행진에 참여했다. 그는 데모를 좋아한다. “데모가 취미”라고 얘기할 만하다. 그는 책에서 신나게 데모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학생들 앞에서 떳떳한 사람이고 싶어서” 데모를 하기 시작했다. 대학교의 강사로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2년간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비정규직 데모에 나간다. “유학시절 8년간 대학원 카페에서, 기숙사 접수 데스크에서, 그리고 연구 조교로 계속 일을 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 시위에 참여한다. “마흔다섯 살까지 독신이었기 때문에” 혼자 살고 혼자 아프고 혼자 버티는 사람들과 함께 데모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유토피아’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이 장에서 그는 폴란드 출신 작가 브루노 야셴스키가 제시한 유토피아를 소개하며 “목적지 자체 혹은 도달한 이후의 시간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유토피아이며, 그 과정이 유토피아인 이유는 동지들이 함께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유토피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꼭 내 눈앞에서 이상향을 보는 순간이 오지 않더라도 어쨌든 더 좋은 앞날을 위해 계속 노력한다는 것”이 데모라고 얘기한다.
정보라는 이 산문집에서 자신의 신념이나 주장을 펼치지 않는다. 싸우는 사람들의 옆자리에 앉아서 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