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최모(33)씨는 매달 미국 S&P500 상장지수펀드(ETF)를 사 모으고 있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도 여러 종목에 분산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최씨는 “직접 고른 종목보다 수익률이 높아 지금은 ETF로만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모(34)씨는 생애 첫 미국 국채 투자를 위해 ETF를 매수했다. 증권사 모바일 앱만 있으면 어느 종류의 채권이든 간편하게 매매할 수 있어 ETF를 선택했다.
ETF는 매매 방법이 주식 거래와 같아 간편한 데다 운용보수도 일반 펀드보다 낮아 투자자들에게 인기다. 국가별 대표 지수에 투자하는 ETF는 물론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인기 테마형 ETF 상품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ETF 순자산총액은 121조1000억원으로 2022년 말(78조5000억원) 대비 54% 급증했다. 새 ETF 상품 출시도 이어져 지난해 160개 ETF가 신규 상장됐다. 2022년(134개)을 넘어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성장의 외관은 화려하지만 ETF를 만드는 자산운용사들의 속내는 까맣게 타고 있다. ETF 과열이 수수료 인하 경쟁에 불을 붙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월배당형 리츠(부동산투자신탁) ETF 총보수를 0.29%에서 0.08%로 인하했다. 삼성자산운용이 비슷한 ETF 상품을 0.09%로 내놓자 이보다 더 낮춘 것이다. 지난해 출시된 미국 배당주 ETF는 총보수가 0.01%까지 내려갔다. 순자산총액(AUM)이 100억원이라면 연간 수익이 100만원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유사한 ETF 상품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상품 구조보다는 수수료가 경쟁력이 된 결과다. 올해만 해도 벌써 35개의 ETF가 신규 상장했는데, 글로벌 비만치료제 관련 기업을 담은 테마형 ETF만 3종류였다.
이에 따라 운용사들의 펀드 수익은 감소 추세다. 지난해 펀드 관련 수수료 수익은 3조2170억원으로 전년보다 922억원(2.8%) 줄었다. 2021년 3조6788억원과 비교하면 14.4% 급감했다.
낮은 수수료는 투자자에겐 반가운 일이지만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으로 이어지면 시장 발전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수수료 인하 여력이 있는 대형사로만 투자 수요가 몰릴 수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동종업계 내에서도 동업자 정신이 필요하다”며 “최소한 중소형사의 주력 ETF 구조를 베껴 더 낮은 수수료를 제시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김준희 기자 zuni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