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하나님은 폭력적인 신인가

입력 2024-04-05 03:04

구약성경 속 전쟁 기사를 읽을 때마다 조마조마합니다. 때론 섬뜩하고 두렵습니다. 가나안 정복 기사를 읽을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신 7:1~2)은 잔인한 고대 장수의 야만적인 목소리처럼 들리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란 말이 절로 나옵니다. 저자 찰리 트림 미국 탈봇신학교 교수가 책에서 다루는 질문인 “하나님은 폭력에 연루되어 있는가”는 아주 오래된 신학적, 윤리적 및 성서 해석학적 난제입니다. 구약을 읽는 평범한 독자뿐 아니라 전문가인 성서학자나 신학자 모두에게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정복 기사는 실제 역사 기술일까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어쨌든 대량 학살을 의미하는 ‘진멸’(히브리어로 ‘헤렘’)은 성경의 독자에게 심각한 윤리·도덕적 골칫거리입니다. 하나님과 대량 학살 명령이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두 표현이 들어간 도덕적 난제에 뾰족한 해법이 있을까요.

출애굽기를 연구하며 ‘전사로서 야훼 하나님’이란 논문으로 휘튼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저자는 여세를 몰아 가나안족 멸절에 관한 간결하고도 통찰력 있는 이 책을 썼습니다. 고대 근동에서의 전쟁 개념과 실제, 고대 사회에서의 대량 학살 문제, 가나안족의 정체 등을 살피는 트림 교수는 하나님이 명령한 대량 학살에 관련된 윤리적 난관을 해결하려는 학문적 입장을 네 가지로 요약합니다.

책에는 각 입장의 장단점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첫 번째 견해는 ‘하나님은 선하지 않은 신이다’이며 두 번째는 ‘구약은 정확한 사건 기록이 아니다’입니다. 세 번째는 ‘구약은 가나안족 멸망을 대량 학살로 묘사하지 않는다’며 마지막 견해는 ‘가나안족 대량 학살은 정당하다’입니다.

복음주의 신학, 특별히 성경의 무오성을 취하는 트림 박사에겐 네 가지 입장 중 선호하는 견해가 있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그에겐 이 문제의 올바른 대답을 제시하는 것이 저술의 목적이 아닙니다. 문제에 제시된 다양한 해결점을 독자에게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이 연루된 폭력성에 관한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대답 대신 고민하게 하는 수많은 질문을 불러내는 책입니다. 성서 해석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진솔하게 드러냅니다. 진지하게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한 번쯤 구약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신약의 하나님이 어떻게 같은 하나님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류호준 목사 (전 백석대 신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