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3학년 때 외삼촌이 돌아가셔서 경남 충무(현재 통영)로 어머니와 같이 내려가게 됐다. 빈소에는 몇 안 되는 친척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 불량스러운 옷차림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험상궂은 인상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외삼촌 둘째 부인의 아들로 나에게는 외사촌뻘 되는 형이었다. 처음 보는 형이었는데 외숙모와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고 숨은 이야기가 많은 듯 보였다.
밤이 되어 저녁을 먹고 있는데 그 외사촌 형이 술에 취하더니 식칼을 들고 “다 죽여 버리겠다”라고 고함을 치며 가족을 위협했다. 가족들은 모두 얼어붙었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 외사촌 형에게 다가가 식칼을 든 팔을 잡았다. 그리고 눈을 쳐다보며 “형! 왜 이래”라고 소리쳤다. 그 형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칼을 내동댕이치더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위험한 긴급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과 행동이었다. 다행히 위험한 상황은 종료됐다. 그때부터 한참 동안 심장이 막 뛰고 손까지 마구 떨렸다. 내가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서 식칼을 든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런 말들을 건넸는지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때 잘못됐으면 정말 큰일을 치를 뻔했다.
다음 날 아침 발인에 외사촌 형은 보이지 않았다. 발인이 끝날 때쯤 되어서 외사촌 형이 집에 들어오더니 나보고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표정은 어제와는 완전히 다르게 온화해 보였다. 나는 위험할 것 같지 않아 따라나섰다. 형은 충무 시내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아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서울에서 온 내 동생이야”라며 목에 힘을 주어가며 나를 소개했다.
어젯밤 내가 “형”이라고 불러준 것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곱상하고 단정한, 서울에서 온 대학생이 동생이라는 것을 자랑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그 형의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 싫지 않았다. 외사촌 형이 내 말을 들어 어제 위험 상황이 해결된 것은 내게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자신감을 올릴 수 있던 경험은 군 방위병 훈련 때도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징병 검사를 받으며 고등학교 때 당한 교통사고 자료를 냈다. 보충역에 해당하는 ‘3을종’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대학생 방위 제도가 없어져 나는 현역 입영 대상이 됐다. 징병 검사도 마쳤다. 그런데 입대 무렵 58년생 입영 대상자가 넘쳐 나는 바람에 대학생 방위 제도가 부활해 결국 방위병으로 가게 됐다. 게다가 신병훈련 과정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다. 신병 교육 후 치르는 필기시험과 카빈총 사격 점수를 합해 1등에서 3등까지 훈련병이 근무처를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인센티브 제도가 생겼다. 사격 시험이 관건이었는데 나는 ‘그분이 오셨다’고 말할 정도로 3발 모두 명중해 만점을 받았다. 방위 근무처 중에 가장 편하다는 곳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자신감을 느끼게 된 일련의 사건은 내 의지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내 삶이 만들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이어서 직장생활에서 일어난 일도 대부분 그랬다.
정리=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