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환경을 넘어선 행복, 우리를 성공으로 이끈다

입력 2024-04-03 03:03

제목에 사용된 ‘행복’이나 ‘성공’은 우리가 선호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들려주는 행복과 성공은 무엇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본문에서 찾고자 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종교 법정에 서게 된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재판받으며 당시 유대 총독 베스도와 분봉왕 아그립바 앞에서 자신이 믿는 예수님을 전하는 장면입니다.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에게 최종적으로 로마까지 이르게 되는 이 과정은 결국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뤄졌습니다. 역경 속에서도 복음 전파의 도구로 자신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전개를 그대로 담아냅니다.

당시 베스도에게 취임 인사차 들렸던 분봉왕 아그립바는 유대인임에도 로마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도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 대해 불을 뿜듯 설파하고 있습니다.

결국 베스도 총독은 바울에게 많은 학문 때문에(아는 게 많아) 미쳤다고 했으며 아그립바 왕은 적은 말로 자신을 현혹하려 한다고 화를 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내가 결박당하여 법정에 서 있다는 이 사실을 제외하곤 베스도와 아그립바도 자신과 같이 복음에 붙잡힌 인생이 되길 원한다”고 역설합니다.

만약 이렇듯 법정에서 주어진 발언 기회가 아니었다면 과연 바울은 총독과 분봉왕, 후엔 로마 황제 앞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상상해봅니다. 바울은 법정을 공식적인 복음 전파의 현장으로 여겼다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아그립바왕 말처럼 가이사(로마 황제의 통칭)에게 상소하지 않았더라면 풀려날 수 있었을 텐데 바울은 비록 죄인의 신분이라도 자신을 황제 앞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닫고 성령님의 세밀한 인도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부림절 기원을 담고 있는 에스더서를 보면 모르드개를 교수형에 처하려 한 하만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장대에 스스로가 달리게 될 것이라 예상치 못했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집단 학살의 위기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통해 구원의 날이 될 것을 그 사건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온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위기를 기회로 만드신 하나님을 시련의 역사 한복판에서 경험한 이 사건은 후손에게까지 두고두고 기억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높은 행복감을 가져도 이후의 삶에서 외부의 아픈 자극이 오면 이전의 행복은 어느 순간 잊고 고통 속에 허우적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법정에 선 바울은 비록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결코 권력 앞에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29절)”고 주저함 없이 말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과거에 앞장서서 그리스도인에게 박해의 칼을 휘둘렀던 바울은 구원받은 자가 누리는 행복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님의 진정한 종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누더기를 걸치고도 비단옷을 두른 사람을 부럽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 없는 인생이야말로 허무한 인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 6:9~10)’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통해 세상을 봅니까. 바울처럼 주저함 없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롬 1:16)고 고백하며 복음과 은혜의 통로로 쓰임 받으시길 축복합니다.

최재복 목사(부천 길교회)

◇1983년 개척된 길교회는 ‘오직 길과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땅끝까지 전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소속 교회입니다. 현재 필리핀 중국 러시아 영국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으며 경기도 부천을 중심으로 생명의 방주 역할도 충실히 감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