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우울증 11년째 연구 뚝심… 세계 최초로 영장류 뇌 들여다봐

입력 2024-04-02 19:33
게티이미지뱅크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는 문부과학성이 지원하는 유일한 종합 과학기술 연구기관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3명이나 근무하고 있을 정도로 일본에서 가장 우수한 연구기관으로 주목받는 곳이다.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의 연구기관으로 인정받는다.

RIKEN의 뇌과학센터는 특히 치매와 우울증을 정복하기 위한 인류의 과제를 연구하는 것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RIKEN은 2014년부터 ‘브레인 마인즈(Brain/MINDS)’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고 질병을 극복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혁신 연구 뒷받침한 정부 지원

프로젝트가 가동되는 데는 일본 정부의 역할이 컸다. 일본 정부는 국가적 과제로 뇌 지도화(매핑) 연구를 꼽으며 금전적 지원을 시작했다. 치매와 우울증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문제라는 인식에 따라 장기적인 연구를 수행하도록 했다.

프로젝트를 이끄는 오카노 히데유키 게이오대 의과대학 교수는 “프로젝트에만 일본 정부가 매년 30억엔(약 267억원)의 연구 자금을 지원했다”면서 “프로젝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충분한 인프라와 연구 자금이 필요한데 정부의 지원 없이는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가 브레인 마인즈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마모셋원숭이의 뇌 지도. RIKEN 제공

브레인 마인즈 연구는 마모셋원숭이의 뇌를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영국에선 동물 윤리 문제 때문에 쥐의 뇌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 국가보다 정교한 방식으로 브레인 마인즈 연구가 이뤄진 셈이다.

마모셋원숭이의 뇌는 전두엽이 발달하는 등 인간의 뇌와 유사한 면이 많다. 히로키 사사구리 RIKEN 뇌과학센터 박사는 “마모셋원숭이는 쥐보다 똑똑하기 때문에 정신 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며 “뇌를 이해하려는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영장류의 뇌를 직접 들여다본 연구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RIKEN은 2018년 브레인 마인즈 ‘비욘드’ 프로젝트를 2018년에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글로벌 협력을 통해 마모셋원숭이를 대상으로만 진행했던 연구를 대형 영장류로 확장하는 게 핵심이었다. 마모셋원숭이와 인간의 뇌에도 차이가 있으므로 대형 영장류 뇌 연구를 통해 인간에 더 근접하려는 시도가 펼쳐졌다. 정신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이를 막을 방법을 찾는 연구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쌓였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데이터를 분석했다.

지난달 27일 일본 사이타마 이화학연구소(RIKEN) 캠퍼스 내 뇌과학센터 전경.

RIKEN의 10년에 걸친 뚝심 있는 연구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성과를 냈다. 치매나 파킨슨병이 마모셋원숭이에게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한 매커니즘이 일부 규명됐다. 일정 부분은 모델링까지 가능해졌다. 또 1~10세까지 216마리의 마모셋원숭이 뇌 MRI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다. 마모셋원숭이의 이른바 ‘뇌 지도’가 완성된 것이다.

뇌 연구에 필요한 첨단 기술도 개발됐다. 가령 생체 내 이미징 시스템인 ‘생체 발광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세포 등 생체 관련 정보를 쉽게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됐다. 또 RIKEN은 온라인 포털을 만들어 다른 연구자들도 연구 성과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했다.

RIKEN은 인류의 난제를 전 세계 연구자들이 협력해 풀어나가길 원한다면서 글로벌 협력을 기획 중이다. 브레인 마인즈 프로젝트는 지난 3월 31일부로 끝났다. 하지만 곧바로 브레인 마인즈 프로젝트와 비욘드 등 두 갈래의 연구를 하나로 통합해 ‘2.0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연구 결과를 글로벌 연구기관에 공개하고, 다른 국가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와 상호교류해 최종적으로 영장류 아닌 인간의 뇌로 연구 영역을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토모미 시모고리 박사는 “2.0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뇌 전체를 데이터화하는 것”이라며 “환자의 뇌 기능을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을 시뮬레이션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아쓰시 미야와키 박사는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과 본격적으로 협업을 시작할 예정”이라며 “치매 등 질환 관련 마모셋원숭이 뇌 데이터를 어떻게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공동으로 고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효율 연구 비결은 글로벌 협력

국경을 초월한 연구 협력은 RI KEN의 핵심 연구 철학이다. 지난달 27일 찾은 일본 사이타마현의 RIKEN 캠퍼스 뇌과학센터 곳곳에선 다양한 국적의 연구자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들은 RIKEN에서 근무하는 다국적 연구자들과 글로벌 세미나에 참여한 해외 연구자들이었다. 다양한 시각과 사고방식, 역량을 가진 연구자들과 글로벌 협력을 꾸준히 진행하면 인류에 도움이 되는 연구결과를 낼 수 있다는 철학이 반영된 모습이다.

토마스 맥휴 박사는 “어떤 국가도 과학적 성과를 독점할 수 없다”며 “가장 효과적이고 창의적인 연구팀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성별이나 문화, 경험, 전문성 등 모든 유형의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도 RIKEN과의 글로벌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는 RIKEN과 뇌 신경생물, 뇌 질환 모델, 뇌신경 공학분야 등 뇌과학 연구 분야 전반에서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맥휴 박사를 KIST 겸직연구원으로 초빙해 치매, 자폐, 계산 뇌과학 연구 분야 협력 토대를 마련했다. 맥휴 박사는 “글로벌 협업은 이런 다양성을 촉진하고 상호 보완적 기술뿐 아니라 문제에 접근하는 독특한 방식을 결합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사이타마=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