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암 환자 A씨는 이제 투병을 포기했다. 그에게 치료를 더 늦추면 안 된다고 했던 의사가 떠나면서 항암 치료 일정이 미뤄졌다. 초등학생 자녀들을 생각하며 버텨오던 A씨는 더는 버틸 힘이 없다고 했다.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시작된 의료 공백 사태가 4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아픈 사람들, 그중에서도 가장 약한 중증환자들부터 무너지고 있건만 정부와 의사들의 힘겨루기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패자인 싸움이다.
이번 사태의 시작은 전공의들이었다. 그들이 병원을 떠난 건 백번 생각해도 잘못된 행동이다. 하지만 결국 병원을 떠난 그들이 돌아와야 사태가 마무리될 수 있다. 정부가 전공의들이 왜 병원을 떠났는지, 원하는 게 뭔지, 어떻게 만나서 설득할지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정부의 대응 과정을 보면 그 답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50분 넘게 담화를 했다. 전공의들에 대한 인식은 이런 것 같다. ‘전공의들은 장래 수입 감소를 걱정해 의대 증원을 반대한다. 의사 증원을 막기 위해 불법적인 집단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정부의 의료개혁은 의사 소득을 떨어뜨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빨리 돌아오라.’
그동안 전공의들은 자기 목소리를 많이 내지 않았지만 이따금 내놓았던 이들의 인식과 대통령의 생각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의사라는 직군 자체의 특수성도 있지만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전공의들의 행태는 20대, 그 세대만의 특성을 헤아리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전공의들은 통상의 MZ세대 눈으로 볼 때 수용하기 어려운 근무 환경을 기꺼이 감당했던 이들이다. 일과 개인생활의 양립을 누리는 의사와 달리 24시간 당직을 서고, 시키지 않은 야근을 자청하고, 도제식 훈련의 압박감을 견뎌냈다. 그랬던 그들이 현장을 떠나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다. 대학교수도, 심지어 개원의도 안 하면 그만이라고 한다. 기성세대로서 이해하기 어렵다. 사태 시작 후 전공의를 잘 아는 의대 교수들은 하나같이 “이번에 떠나는 전공의들은 진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자기가 어떤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찾고 수긍할 때 움직이는 세대의 특성상 정부에서 찍어 내리는 듯한 행정명령이 통하지 않을 거란 얘기였다.
급해진 정부는 대학 총장들과 의대 교수들을 불러 제자들을 설득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과거 4년 전 문재인정부의 의대 증원 사태 당시 현재 야당이 여당이던 시절 당정과 의사들의 막판 협상에서 배제됐던 전공의들은 더 이상 스승인 의대 교수들과 선배인 의협 개원의들을 믿지 않는다.
어떤 정책이든 효과를 보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이를 지지하는 여론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정책의 당사자를 설득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사회학자들은 한국만큼 세대별로 삶의 경험과 공유하는 인식이 다른 나라가 없다고 말한다. 20대 청년세대의 달라진 직업의식, 이들의 경제관을 이해하지 못한 정책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윤석열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방향은 옳지만 섬세하지 못한 현재의 접근 방식으로는 성공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최근 서울아산병원 내과에서 사직하고 떠난 백동우 전공의는 한 의료계 매체에 ‘흰 네잎클로버를 서랍에 넣으며’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단언컨대 의사 봉급이 줄더라도 필수의료와 지방의료를 살릴 수 있는 정책을 추진했다면 저를 포함한 동료들은 진료를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로 “환자와 의사 사이에 필수적인 신뢰 관계가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했다.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이 그의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좋겠다.
김나래 사회부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