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쿠웨이트의 한 공사 현장. 한밤중 인적 없는 곳에 주차한 한 버스로 몇몇 한국인 건설 노동자가 모여들었다. 예배 인도를 맡은 사람만 손전등을 켤 수 있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참석자들은 “우리에게 예배할 교회를 달라”며 눈물로 기도했다. 교회 건물은 물론, 예배 공간조차 마련하기 힘든 중동 지역에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한국인 노동자들은 건설현장 막사와 휴게실, 버스 등에 모여 예배하곤 했다. 한국의 건설기업 공사 현장 곳곳에 세워진 ‘현장 교회’의 시작이다.
현장 교회로 출발한 중동 지역 한인교회 50년 역사를 기록한 책이 최근 나왔다. 중동지역한인선교협의회(중선협) 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중동선교 한인교회사’(우리하나)다. 22개국 34개 한인교회의 흥망성쇠가 여러 사진 자료와 함께 상세히 기록됐다. 책 출간을 위해 방한한 중선협 회장인 신영수(56) 두바이한인제자교회 목사를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만났다.
중선협은 74년 시작된 중동 한인교회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이번 책을 기획했다. 중동선교 50주년을 맞는 올해 출간을 목표로 2022년 역사편찬위원회를 꾸린 중선협은 각국 한인교회의 자료를 일일이 수집해 1년6개월 만에 683쪽의 방대한 책을 완성했다.
책에 따르면 한국 건설기업의 ‘중동 붐’을 타고 70~80년대 세워진 현장 교회는 150여곳에 이른다. 회사로부터 예배 공간을 얻지 못한 이들은 영상 40도를 웃도는 사막에서 그늘막 하나 없이 예배하기도 했다. 책에는 촛불 들고 사막에서 저녁 예배를 드리다 전갈에 물린 사례도 나온다.
90년대를 맞아 현지 정착 교민이 유입되면서 현장 교회는 한인교회로 발전해 오늘에 이른다. 2000년대엔 국내 대형교회의 지원으로 세워진 교회도 속속 등장한다. 현재 한인교회는 주로 공익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한다. 이라크 기독교인과 시리아 난민 등을 대상으로 한 구제 사역에도 열심이다.
한류 열풍과 산유국의 탈석유 및 산업군 다각화 움직임으로 중동 지역은 다시 한국인에게 ‘기회의 땅’이 됐다는 게 신 목사의 판단이다. 2006년 아랍에미리트에 정착해 현재 교회와 한국어 교육기관인 두바이다니엘비전센터를 이끄는 그는 “중동 부국의 산업 다각화로 전 세계 전문가가 이 지역에 모이고 있다”며 “한류의 영향으로 현지에선 한국인 전문가를 선호한다. 기독 전문가가 현지에서 삶으로 복음을 보여줄 기회가 늘어난 셈”이라고 설명했다.
신 목사는 오는 6월 24~27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제23차 중선협헝가리선교대회’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동 선교사와 그 가족 300명이 참석한다. 그는 “항공료 절반은 참가자가, 나머지는 중선협이 부담하는데 이를 위해 후원과 기도가 필요하다. 중동선교에 관심 있는 교회의 지원을 기다린다”고 밝혔다.
글·사진=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