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된 디즈니·스타벅스·맥도날드
오는 3일(현지시간) 주주총회를 앞둔 월트디즈니가 대표적이다. 디즈니는 트라이언 펀드 매니지먼트의 넬슨 펠츠 최고경영자(CEO)로부터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다. 펠츠 CEO는 월가의 대표적 행동주의 투자자다. 그는 지난해 11월 말 디즈니 이사회를 상대로 위임장 대결을 벌이겠다고 선언한 뒤 현 이사회와 경영진을 공격해 왔다. 본인과 전 디즈니 임원 제이 라슬로의 이사 선임을 요구하고 있다. 2020년 디즈니 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복귀한 밥 아이거 CEO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모양새다.
펠츠 CEO는 특히 디즈니의 캐스팅에 여성과 흑인이 주인공이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며 경영 개입에 나섰다. 그는 지난 2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영화나 쇼를 즐기려고 보러 가는 것이지 메시지를 얻으려고 가는 게 아니다”라며 “왜 관객들이 여성만 출연하는 마블 시리즈를 봐야 하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디즈니가 ‘블랙 팬서’ ‘인어공주’ ‘더 마블스’ 등에서 흑인과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지나치게 신경 쓴 결과라는 취지다.
경영 다툼이 본격화한 디즈니의 주가는 올해 들어 35% 올랐다. 행동주의펀드와의 표 대결로 주주 관심이 높아진 덕분이다. 디즈니는 “펠츠는 디즈니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허영심만 가득하다”며 영상을 통해 공개 비판했고, JP모건과 글라스루이스(GL) 등의 지지를 확보했다. 반면 의결권 자문사 ISS는 펠츠 CEO를 지지할 것을 권고했다. 당장의 주가 상승은 긍정적이지만, 주총 표 대결을 위한 마케팅과 캠페인에 7000만 달러(약 943억원)가 든다는 추산도 있어 디즈니가 불필요한 지출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비판도 나온다.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도 행동주의펀드의 표적이 됐지만 가까스로 경영권을 지켜냈다. 트릴리움 자산운용사 등은 지난해 스타벅스 주주총회에서 사측의 노조 활동 방해를 제3자를 통해 검토해야 한다고 주주 제안해 통과시켰다. 스타벅스 노조 연합은 최근까지 이사회에 직원 대표자들을 이사회에 참여시키려고 했지만 의결권 자문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자 이를 철회했다. 2022년에는 행동주의 투자자인 칼 아이칸이 돼지고기를 공급하는 업체의 사육 환경을 개선할 것을 요구하며 맥도날드 이사회 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데이터 리서치 기관 딜리전트에 따르면 지난해 행동주의펀드 공격을 받은 미국 기업은 550개에 달했다. 조사 대상 23개국에서 총 951개 회사가 공격받았는데, 북미에서는 1년 전보다 공격 대상 기업 수가 9.6% 증가했다.
日 증시 활황도 행동주의펀드 덕?
고공행진 중인 일본 증시의 배경에 행동주의펀드의 활동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행동주의펀드의 표적이 된 일본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2022년 1170억 달러(약 157조6600억원)에서 지난해 2520억 달러(약 339조5700억원)로 증가했다. 행동주의펀드 등 기관투자자가 주총에서 주주제안을 한 일본 기업 수 역시 2021년 23개사에서 2023년 61개사로 증가했다. 증시 대표 지수인 닛케이 225지수는 최근 1년 동안 43% 급등했다.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인 팰리서캐피탈은 일본 게이세이철도를 압박하고 있다. 게이세이철도가 보유한 도쿄 디즈니랜드 운영사(오리엔탈랜드) 지분 중 일부를 팔아 철도 사업에 재투자하라는 것이다. 싱가포르 기반 헤지펀드 3D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는 일본 후지소프트와 삿포로홀딩스에 미활용 부동산을 매각해 유동성(자금)을 확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삿포로홀딩스는 이에 따라 부동산 사업에 대한 옵션을 검토하기 위한 위원회를 설립했고, 후지소프트는 부동산 면적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FT에 따르면 엘리엇은 일본 최대 부동산 개발기업인 미쓰이부동산에 1조엔(약 8조903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촉구했다. 엘리엇은 미쓰이부동산에 오리엔탈랜드의 지분 36억 달러(약 4조8500억원)를 매각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일본 내 행동주의펀드 활동이 증가하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 비공개회사로 전환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김수연 법무법인 광장 연구위원에게 의뢰한 ‘주주 행동주의 부상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비상장으로 전환한 일본 기업은 2015년 47개사에서 2022년 135개사로 증가했다. 김 연구위원은 “일본 내 행동주의펀드를 비롯한 기관투자자가 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간섭하는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상장에 따른 기업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며 “한동안 일본에서 상장기업의 비상장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