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를 일기로 영면한 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31일 정·재계 인사들의 추모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범효성가와 사돈지간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부인 김윤옥 여사와 빈소를 찾아 30분가량 머무르며 사돈이자 고인의 동생인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명예회장 등 유족을 위로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아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과 오전 일찍 빈소에 들렀다. 전날에는 창업주 시절 동업 관계로 인연이 깊은 삼성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오너 일가 중 가장 먼저 빈소에 걸음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효성가에서 ‘형제의 난’을 일으킨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은 전날 상주가 아닌 조문객으로 왔다가 5분 만에 빈소를 떠났다.
미국에서 공학도의 길을 걷던 고인은 부친 고 조홍제 효성 창업주의 부름을 받고 1966년 귀국해 효성물산에서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1982년부터 2017년까지 35년 동안 효성을 이끌었던 그에게는 ‘섬유 산업의 선구자’ ‘미스터 글로벌’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기술과 품질에 대한 집착이 심하고 현장 중심의 꼼꼼한 업무 스타일로 ‘조 대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고인은 일찍이 “우리 모두의 일터인 효성은 산업을 일으켜 국민경제에 이바지한다는 ‘산업입국’의 정신으로 창업됐다”면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또한 기술에 대한 집념이 대단한 ‘기술 경영인’이었다. 이탈리아 포를리로 신혼여행 가서 기술연수를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이 지역은 동양나이론의 기술자들이 나일론 생산기술을 익히기 위해 연수를 받던 곳이었다.
1971년에는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신기술 개발을 선도했다. 나일론, 폴리에스터 등 합성섬유로 성공한 뒤인 1980년대에 도전을 멈추지 않고 합성수지인 폴리프로필렌 개발을 주도해 성공을 거뒀다. ‘섬유의 반도체’라고 불리는 스판덱스 독자개발을 결정하고 연구·개발(R&D)을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효성은 1990년대 초 당시 미국, 일본 등만 보유하고 있던 스판덱스 제조기술을 개발해냈다. 이는 타이어코드와 함께 오늘날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효성의 대표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2011년에는 한국기업으론 처음으로 탄소섬유를 독자기술로 개발해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삼았다.
‘재계 어른’으로서도 구심점 역할을 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당시 “물고기가 연못에서 평화롭게 노닐고 있는데 조약돌을 던지면 사라져버린다. 돈도 같은 성격이어서 상황이 불안하면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기업의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유학 시절 다진 일어와 영어 실력이 출중했던 그는 국제관계에 밝아 민간외교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한미재계협회장, 한일경제인협회장 등을 맡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도 공헌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