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서 ‘태풍’으로

입력 2024-04-01 04:0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가 31일(한국시간)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 파크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경쾌한 스윙을 하고 있다. 이정후는 이날 8회초 톰 코스그로브의 공을 통타해 메이저리그 첫 홈런을 쏘아 올렸다. AP뉴시스

미국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가 빅리그 폭격을 시작하며 돌풍을 예고했다. 데뷔 직후 이틀 동안 3안타를 때려낸 데 이어 사흘째엔 홈런까지 선보이며 현지 팬들 뇌리에 이름 석 자를 새겼다.

이정후는 31일(한국시간)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 파크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4타수 1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타율은 0.333(12타수 4안타)가 됐다. 타선 응집력과 선발투수 조던 힉스의 5이닝 무실점 호투에 힘입은 샌프란시스코는 9대 6 승리를 거두고 시즌 2승째를 챙겼다.

첫 세 타석에선 운이 따르지 않았다. 타구 질은 준수했으나 번번이 호수비에 걸렸다. 네 번째 타석은 달랐다. 3-1로 앞선 8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 들어선 이정후는 좌완 불펜 톰 코스그로브의 1·2구를 신중하게 지켜봤다. 실투성 스위퍼에도 꼼짝 않는 모습을 본 코스그로브는 다시 한번 같은 구종을 택하는 실수를 범했다. 몸쪽 꽉 찬 공에 노렸다는 듯 돈 방망이가 돌았고, 타구는 그대로 높은 포물선을 그려 오른쪽 담장 바깥에 떨어졌다. 개막 3경기 만에 터진 이정후의 빅리그 데뷔 첫 홈런이었다.

홈런이 확정되자 펫코 파크를 찾은 샌프란시스코 원정 팬들은 큰 함성으로 답했다. 동료들도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이정후와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반겼다. 중계 카메라가 이날 관중석을 찾은 이종범 전 LG 트윈스 코치를 비추자 미국 중계진은 “‘바람의 손자’가 터뜨린 빅리그 첫 홈런을 ‘바람의 아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이정후가 까다로운 왼손 투수를 상대로 홈런을 쳤다”며 “현재까지 이정후는 매우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고 칭찬했다.

이정후는 MLB 첫 홈런에 덤덤한 반응이었다. 그는 “맞는 순간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홈런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뭔가 보여줬다는 생각은 안 하고, 빨리 적응하려고 하루하루 열심히 하려다 보니깐 나왔다”고 말했다.

시범경기 막판 두 경기에서 무안타에 그쳤던 이정후는 정규시즌 개막과 동시에 기어를 끌어 올렸다. 지난 29일 개막전에서 샌디에이고 에이스 다르빗슈 유를 맞아 마수걸이 안타를 때려내더니 이튿날엔 1타점 적시타 포함 5타수 2안타를 수확했다.

연일 계속되는 그의 활약은 ‘친정’ KBO리그에서도 화제다. 이범호 KIA 감독은 이날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에 앞서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 “(이정후가) 올해 3할 타율, 10홈런은 충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경기에서 중전 안타를 때리는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다”며 “빅리그 상위급 투수의 공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고도 덧붙였다.

눈에 띄게 달라진 타선 덕에 샌프란시스코는 이틀 연속 승리를 챙겼다. 8회 이정후의 홈런을 신호로 타자 일순하면서 대거 6점을 뽑은 것이 주효했다. 외야수 마이클 콘포토는 시즌 2호 홈런을 그랜드 슬램으로 장식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