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소풍’ 끝낸 조석래 회장을 기리며

입력 2024-04-01 04:08

재계의 큰 별이 또 졌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89세를 일기로 지난 29일 영면에 들었다. 올해 타계 40주기를 맞은 부친 고(故)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곁으로,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소천했다. 기자 초년병 시절 취재 현장에서 두루 만난 재계의 창업 2세 거목들은 스러졌지만 역사의 산증인으로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조 명예회장과 가까이에서 대화를 나눈 건 2009년으로 거슬러간다. 그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었다. 2007~2011년 재임 기간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 ‘보듬이나눔이 어린이집’ 착공식이 그해 8월 25일 경기도 오산 가장산업단지에서 열렸다. 시삽식에서 흙을 한가득 퍼 올리고선 무거워하며 아이처럼 해맑게 웃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다. 당시 효성은 다른 이유로 재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하이닉스가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었고, 효성이 인수전에 뛰어들지가 관건이었던 때다. 기자가 아닌 척 배회하다 조 명예회장에게 슬쩍 다가가 하이닉스 인수 의향을 물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불편한 기색 없이 유머로 넘기는 기지를 발휘했다. “하이닉스가 뭐 하는 회사더라. 섬유회사인가요?” 의도한 동문서답은 진솔한 답을 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들렸고, 장난기 머금은 미소에 더 질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효성은 하이닉스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 그러다 특혜 시비 등 악재가 겹치면서 50여일 만에 의사를 철회했던 일화가 스친다.

조 명예회장은 일찍이 저출산과 여성의 경력단절 현상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는 “국가적 재앙으로까지 이야기되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육 부담을 덜어주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어린이집 건립 사업에 공을 들였다. 2008년 11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사업 추진을 결의했고 이듬해부터 2020년까지 전국에 101개의 어린이집이 개원했다. 11년 대장정의 첫발을 뗀 주인공이 조 명예회장이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사업을 이어받아 마무리하기까지 23개 그룹이 550여억원을 지원했다. 합계출산율이 지금보다 높은 1.19명이었지만 저출산 대응을 위해 재계 총수들이 의기투합하던 낭만과 혜안이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한국경제인협회(옛 전경련)를 이끌고 있는 후배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추도사에서 조 명예회장을 ‘국민 모두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진정한 경제인’이라고 애도했다.

4대 그룹이 불참하면서 유야무야 사라진 전경련 회장단 회의는 한때 재계 총수가 한자리에서 현안을 논의하던 주요 협의체였다. 회의가 있는 날이면 취재진도 호텔에 밤늦게까지 진을 치고 총수를 기다리곤 했다. 이들 중 대다수가 고인이 됐고 경영 일선에 있는 총수는 드물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지만 인류는 끊임없이 진화하듯, 기업도 창업주가 뿌린 씨앗을 자양분 삼아 지속 성장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지금 재계는 1·2세를 넘어 3·4세로 완연한 세대교체를 이루고 있다. 이들이 역할을 외면하거나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기업보국·산업입국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강의 기적’을 이끈 창업주 정신을 훼손하지는 말아야 한다. 효성그룹은 2017년 장남 조현준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아 승계가 안정 궤도에 올랐지만 삼남 조현상 부회장과 진정한 형제 독립경영의 출발선에 서는 것은 올해부터다. 잡음 없이 계열 분리하는 게 고인에 대한 마지막 선물일 수 있다.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이야기했듯 시간은 느슨한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유한한 시간의 소중함과 삶의 무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다.

김혜원 산업1부 차장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