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권오식 (2) 교회 빼먹고 캐치볼 하다 자동차 사고로 다리 잃을 뻔

입력 2024-04-02 03:01
권오식(오른쪽) 보국에너텍 부회장이 1973년 친형(왼쪽 두 번째)의 중학교 졸업 기념으로 여동생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한 모습.

나는 내성적인 성격에 소심하고 병약한 아이였다. 자기주장을 못 펴고 부끄러움이 많아 여러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초등학생 시절 여학생 짝에게 제대로 말도 못 붙이고 혹시 말을 걸어오면 얼굴이 빨개지며 대답도 잘 못 했다. 한번은 휴일에 동네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멀리서 내 짝꿍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왠지 만나면 어색할 것 같고 부끄러워 급히 다른 골목으로 숨어버린 기억도 있다.

몸이 약해 여러 병치레를 많이 했다. 초등학교 때 간장염 신장염 등을 앓았다. 병원을 내 집 드나들 듯해서 ‘종합병원’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져 왼쪽 손가락을 스케이트 날에 베어 11바늘이나 꿰맸고 탁구를 하다 넘어져 탁구대 모서리에 눈두덩이를 부딪치면서 찢어져 또 8바늘을 꿰매기도 했다.

대형사고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어났다. 5월 두 번째 일요일로 아직도 기억한다. 친구 따라 교회를 다닌 지 석 달쯤 됐을 때였다. 윗집 형이 야구를 하자고 해서 그 핑계로 교회를 빼먹었다. 우리 집 앞에서 야구공을 주고받으며 놀았는데 자동차 한 대가 느린 속도로 다가왔다. 나는 벽 쪽으로 몸을 붙여 기대섰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방향을 틀어 내가 서 있는 벽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차 오른쪽 뒷문이 열려 벽에 긁히자 운전자가 뒤를 보고 핸들을 왼쪽으로 틀어버린 것이었다. “앗” 하는 비명과 함께 차량 범퍼가 벽에 붙어 있던 내 왼쪽 다리 무릎을 치고 지나갔다. 순간 왼쪽 다리가 없어진 듯했다. 극심한 고통에 나는 길바닥에 쓰러졌다.

근처 병원으로 갔지만 “여기서는 고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정형외과를 추천해줬다. 왼쪽 무릎 관절이 여러 조각으로 부서졌다고 했다. 꼬박 100일간 정형외과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고 퇴원 후 6개월 동안 목발을 짚고 다녔다.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네가 교회를 다녀서 다친 거니깐 앞으로 교회에 나가지 말라”며 불호령을 내렸다. 나는 부모님 걱정을 끼친 죄인이란 생각에 “일요일에 교회를 안 가서 다친 건데…” 하고 대꾸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병원에서는 다리를 절단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지장 없이 치료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한참 성장기에 무릎 관절의 심한 골절로 성장이 멈춘 탓에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조금 짧다. 그러나 이 사고는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나중에 성인이 돼 생각해 보니 하나님이 주신 벌이면서도 그 이후 하나님이 내 인생에 계속 관여하시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었다.

6개월간 목발을 짚고 다닌 탓에 소심함과 부끄러움은 더 심해졌다. 목발을 짚고 다니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 심지어 대인 기피증까지 생겼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성격을 고쳐보려고 노력했다. 많은 선배가 “대학 4년간 해볼 수 있는 것은 모두 해 봐야 후회 없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동아리 활동이나 여행 등에 나섰고, 방송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기도 했고 과 대표도 해봤다. 그러던 대학 3학년 때 자신감을 키우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정리=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