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삶과 기억

입력 2024-04-01 04:02

잠을 많이 자고 일어난 날에는 꿈과 현실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꿈에서 손가락을 다쳤는데 그 통증이 너무 생생해서 깨어 있는 동안에도 자꾸 손을 움켜쥐었다. 요즘은 나의 경험이라는 것이 불완전한 기억에 불과하다는 실감을 종종 한다. 같은 사건을 공유한 사람과 서로 다른 기억을 갖게 되거나, 누군가로부터 들었다고 생각했던 말이 사실은 누구도 한 적 없는 말임을 알게 되었을 때 특히 그렇다.

기억의 불완전함은 과거와 현재를 믿을 수 없게 하기에 존재를 불안하게 하지만 그러한 혼동이 아름다운 중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래는 브라질 소설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아들 파울루가 타자기로 글을 쓰고 있는 어머니 사진을 보며 회상한 기억의 내용 일부다.

“어머니는 이렇게 무릎에 타자기를 올리고 글을 썼어요. 이 사진은 연출된 것이기는 하지만요. 어머니는 네다섯 시쯤, 아주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글을 썼어요. 요즘에는 주로 컴퓨터를 사용하니까 타자기 소리를 잘 모르실 텐데, 빗방울이 창문에 부딪치는 것 같았어요. 몇 년 전에는 창문에 빗방울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기에 엄마가 글을 쓰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죠.”

어떤 냄새를 맡으면 과거의 어느 한 순간으로 돌아간 것처럼 기억이 소환된다. 어떤 노래를 들어도 그렇다. 파울루가 타자 소리와 비슷한 빗소리 때문에 어머니와의 기억에 빠르게 접속했듯이 기억과의 매개체를 통해 과거는 현실이 된 것처럼 생생한 감각으로 찾아오고는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삶을 더욱 풍성하게 살게 된다. 과거라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때때로 현재의 순간으로 되살아나 삶의 시간을 두텁게 만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삶의 시간은 하나의 겹으로 흐르지 않는다. 여러 겹의 시간이 하나의 생애 동안 흐르고 있다. 기억이라는 것, 또 모든 과거와 미래를 품고 있는 현재라는 시간성이 지닌 기묘하고 아름다운 힘이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