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던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9일 전격 사임했다. 지난 4일 대사에 임명된 지 25일 만이다.
이 대사 측 변호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공지를 보내 “이 대사가 외교부 장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 대사는 “저는 그동안 공수처에 빨리 조사해 달라고 계속 요구해왔으나 공수처는 아직도 수사기일을 잡지 않고 있다”며 “저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가 끝나도 서울에 남아 모든 절차에 끝까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변호인은 전했다.
외교부는 이후 공지를 통해 “이 대사 본인의 강력한 사의 표명에 따라 임명권자인 대통령께 보고드려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사는 지난 4일 호주대사에 임명된 직후 공수처의 출국금지 사실이 드러나면서 도주 출국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이 대사는 지난 7일 공수처에서 약 4시간 조사를 받고 10일 호주로 출국했으나 여론은 점차 악화됐다. 결국 이 대사는 지난 21일 방산 관련 주요국 공관장 회의 일정을 명분으로 자진 귀국했다. 이 대사는 지난 19일 공수처에 조사기일지정 촉구서를 제출하는 등 공수처 압박에 나섰다. 그러나 공수처는 압수물 분석이 진행 중이고 참고인 조사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소환조사는 당분간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며 팽팽한 대치를 이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사는 전날 밤 사퇴 의사를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사 측 관계자는 “대사직을 던져서라도 공수처와 싸워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권 수뇌부에서는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의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이 대사 논란이 총선에 악영향을 주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의견의 일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이 대사의 사퇴 필요성을 대통령실에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은 무조건 옳다’는 평소 원칙에 따라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이 대사 임명 과정에서 미처 국민의 마음을 살펴보지 못했고, 앞으로는 국민 뜻을 무조건 따르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만시지탄’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긍정적 효과가 있길 기대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강민석 민주당 대변인은 “이 대사의 사의표명을 통한 사퇴 수순이 아니라 윤 대통령이 해임시켰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대사가 물러난 것만으로는 미봉에 지나지 않는다”며 “윤 대통령은 ‘도주대사 파문’과 ‘외교 결례’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구자창 박준상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