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9일 외교부 장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외교부는 “본인의 강력한 사의 표명에 따라 임명권자인 대통령께 보고드려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사로 임명된 지 25일 만이다. 정치적, 외교적 부담만 떠안은 채 대사 임명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 셈이 됐다. ‘이렇게 될지 몰랐나’ ‘이럴 거면 도대체 왜 임명했나’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논란은 외교부가 지난 4일 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채모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된 상태였던 이 대사를 공관장으로 발탁하면서 시작됐다. 이 대사가 출국금지 상태임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공수처는 지난 7일 이 대사를 조사했다. 다음 날 법무부는 출국금지심의위원회를 거쳐 이 대사의 출국금지를 해제했고, 이 대사는 지난 10일 호주로 출국했다.
총선 국면과 맞물려 주요 피고발인인 이 대사를 외국으로 부임하게 했다는 수사 방해 비판이 일었지만 정부는 “이 대사 임명을 철회할 가능성은 없고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며 일축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계속되자 이 대사는 방산협력 관련 주요국 공관장 회의 참석을 명목으로 지난 21일 귀국했다. 대사로 출국한 지 열흘여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 대사는 귀국 후 국방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만나며 기관장 면담 일정을 진행했고 28일에는 방산 공관장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이 대사 체류를 위한 ‘급조된 회의’란 지적이 이어졌다.
이 대사는 사의 표명 사실을 밝히면서 아직도 수사기일을 잡지 않은 공수처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이 대사 귀국 후 “소환 조사는 당분간 어렵다”고 밝힌 데 대해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 등 8명에게 혐의점이 있다며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보고했지만,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이 대사가 이첩 보류를 명령했다는 것이 골자다.
이 대사가 물러나는 것으로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지지율이 급락한 정부와 여당의 기대처럼 총선을 앞두고 분위기 반전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결례 논란 등 호주에 대한 외교적 부담을 떠안게 됐고, 무엇보다도 국민들을 이해시켜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도대체 왜 공수처에 고발돼 있던 그를 대사로 발탁했던 것인지, 논란이 불거진 직후 더 일찍 사퇴시킬 수는 없었는지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