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큰 아쉬움 남는 이종섭 대사의 뒤늦은 사퇴

입력 2024-03-30 04:01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방위산업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입장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9일 외교부 장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외교부는 “본인의 강력한 사의 표명에 따라 임명권자인 대통령께 보고드려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사로 임명된 지 25일 만이다. 정치적, 외교적 부담만 떠안은 채 대사 임명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 셈이 됐다. ‘이렇게 될지 몰랐나’ ‘이럴 거면 도대체 왜 임명했나’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논란은 외교부가 지난 4일 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채모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된 상태였던 이 대사를 공관장으로 발탁하면서 시작됐다. 이 대사가 출국금지 상태임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공수처는 지난 7일 이 대사를 조사했다. 다음 날 법무부는 출국금지심의위원회를 거쳐 이 대사의 출국금지를 해제했고, 이 대사는 지난 10일 호주로 출국했다.

총선 국면과 맞물려 주요 피고발인인 이 대사를 외국으로 부임하게 했다는 수사 방해 비판이 일었지만 정부는 “이 대사 임명을 철회할 가능성은 없고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며 일축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계속되자 이 대사는 방산협력 관련 주요국 공관장 회의 참석을 명목으로 지난 21일 귀국했다. 대사로 출국한 지 열흘여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 대사는 귀국 후 국방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만나며 기관장 면담 일정을 진행했고 28일에는 방산 공관장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이 대사 체류를 위한 ‘급조된 회의’란 지적이 이어졌다.

이 대사는 사의 표명 사실을 밝히면서 아직도 수사기일을 잡지 않은 공수처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이 대사 귀국 후 “소환 조사는 당분간 어렵다”고 밝힌 데 대해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 등 8명에게 혐의점이 있다며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보고했지만,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이 대사가 이첩 보류를 명령했다는 것이 골자다.

이 대사가 물러나는 것으로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지지율이 급락한 정부와 여당의 기대처럼 총선을 앞두고 분위기 반전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결례 논란 등 호주에 대한 외교적 부담을 떠안게 됐고, 무엇보다도 국민들을 이해시켜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도대체 왜 공수처에 고발돼 있던 그를 대사로 발탁했던 것인지, 논란이 불거진 직후 더 일찍 사퇴시킬 수는 없었는지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