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깬 소청과 전공의 “2000명 증원 재검토” 요구

입력 2024-03-29 04:05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28일 한 의료진이 벤치에 앉아 휴식하고 있다. 이날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서울의 ‘빅5 병원’ 교수들은 모두 사직서 제출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윤웅 기자

의과대학 증원에 반대하며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이 집단행동 39일째인 28일 처음으로 입장을 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은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책에 대해 “소용없다”고 일축하며 2000명 증원 재검토를 요구했다. 정부는 전공의 연속근무시간 단축을 오는 5월부터 앞당겨 시행하는 등 전공의 달래기에 나섰지만 이들이 의료 현장에 복귀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아 보인다.

서울대병원 등 18개 수련병원 소속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150명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정부는 2000명이라는 무리한 증원을 고집하는 것보다 증원 필요성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실시해 더 이상의 의료 붕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00명의 의대생 일부가 소청과 전문의가 되어도 이후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의미 없는 정책”이라고 했다. 의사 집단행동 이후 수련병원 전공의가 단체로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들은 환자와 보호자를 향해 “아이들과 보호자들에게는 믿음에 보답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면서도 “예견된 사태에도 그동안 정부가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최근 정부가 소청과 전공의를 대상으로 월 1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수가 인상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검증 없이 쏟아내는 정책은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현재 전공의들은 ‘개별 사직’임을 강조하며 집단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 대전협 차원의 목소리를 내면 정부가 내린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침묵해 왔다. 이날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도 정부를 상대로 낸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심문에 참석했지만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소청과 전공의가 처음으로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각 수련 과목별로 전공의들이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과목별로 대표자는 두지 않은 상태라 정부가 요구한 대화 협의체 구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

정부는 연일 전공의 처분을 유예하는 등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당정 협의 중에 복지부가 행정처분을 바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방안도 내놨다. 개정된 전공의 수련 환경 관련 법률 시행은 2026년 2월부터지만 이를 앞당겨 오는 5월부터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전공의 수련시간은 주80시간, 연속근무시간은 36시간 범위로 축소해야 한다. 이날 정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지난달에 이어 건강보험 재정 1882억원을 한 달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한편 동맹휴학 등 집단행동을 벌이고 있는 의대생들도 소송을 예고했다. 대전협 소송을 대리하는 이병철 변호사는 “전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 3명을 만났고, 전국 40개 의대 학생들이 의대 증원 집행정지와 본안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환자 단체들은 의사 집단 행동 사태 속에서 국민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남인숙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장은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환자의 건강과 안전이 우선돼야 하는데도 환자와 국민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어 의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며 “정부는 의료계와 적극적으로 대화해 조속한 해결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유나 양한주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