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 이미지가 있다. 너무 이지적이어서 다가가기 힘든 느낌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의 법무법인 ‘미션’의 사무실에서 만난 김성훈(41) 대표는 다가가기 편한 맘씨 좋은 아저씨 같은 인상을 풍겼다. ‘스타트업’ 전문 로펌의 수장인 김 대표는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업계 정책 연구에 더 진심이다. 김 대표는 “창업가들의 반짝거리는 눈이 너무 좋다. 그런 분들이 제 이웃으로 주어진 것은 더 좋다”며 활짝 웃었다.
대형 로펌 떠나 창업한 까닭
김 대표는 2021년 5월 미션을 설립했다. 연세대 로스쿨 1기 졸업 후 국내 대형 로펌인 로고스에서 10여년간 일했다. 로고스 사내 벤처인 스타트업 지원센터장을 맡아 법률이나 행정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도왔다. 가까이서 지켜본 스타트업 고충을 정책 등 거시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다. 그를 따른 변호사가 4명이나 됐지만 김 변호사는 창립 초반 ‘월급이나 제때 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밤잠을 설쳤다. 김 대표는 “직원 월급이 한 번도 밀리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며 웃었다.
설립 3년 차인 미션은 그의 농담과는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창업 당시 20여곳에 불과한 고객사는 10배로 증가했다. 변호사 5명이던 사무실엔 국내외 변호사 21명이 일하고 있다. 지난해 1월 미국 진출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계는 특성상 많은 기업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크로스보더 컴퍼니가 돼야 한다”며 “혁신가들이 세계로 나아갈 때 절실한 규제 검토 등 법리적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법을 통합적으로 해결하는 로펌이 국내에 거의 없어서인지 현재 미션 매출의 20~30%는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스타트업 책임으로… ‘성수동 호구’ 자처
김 대표에게는 로고스 소속 변호사 시절부터 ‘성수동 호구’라는 별명이 붙었다. 스타트업 사무실이 많은 성수동에서 돈을 안 받고 법률 자문을 해주거나 규제 개혁 등 관련 기관에 정책을 제안하는 데 정성을 쏟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인생에서 광야를 건너는 이들이 찾는 사람이 변호사”라면서 “변호사를 흔히 욕망의 대리인이라고 표현하지만, 신앙인으로서 그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창업자 고민을 듣다 보니 규제 등 더 큰 장벽이 보였다. 그렇기에 미션은 기업 자문을 하면서 얻게 된 문제점을 정책적 과제나 연구를 통해 거시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정부 기관 등을 초청해 포럼, 강연을 수시로 개최하고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인 ‘더프론티어’를 통해 관련 정보를 나누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 생태계와 관련한 국회 보좌관 모임에서 발제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보좌관이 ‘미션은 대체 뭐 먹고 사냐’고 걱정하시더라”며 “스타트업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으로 하는 일”이라고 했다.
기독 변호사로 지켜내고 싶은 것들
미션의 변호사들은 지역 로스쿨과 창업센터를 직접 찾아가 멘토링 하는 등 동역자를 자처한다. 이는 로스쿨 1기생인 그가 로스쿨에 대한 법조계의 적대감이 상당하던 시절 따뜻하게 손 내밀어준 크리스천 변호사 모임인 기독법률가회(CLF)의 영향이 컸다. 김 대표는 “아무런 이해 관계없는 선배들이 전국의 로스쿨 기독 모임에 찾아와 시간을 내주셨다”며 “당시 법률가로서 나눈 소명 의식과 신앙 훈련이 현재까지 중요한 삶의 목표로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미션은 1년 최대 40여명 로스쿨생을 대상으로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출신 대학을 아예 쓰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으로 실력을 바탕으로 한 지역의 로스쿨생에게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로스쿨 학생 교육과 스타트업 창업자 법률 자원봉사단체 ‘셰르파’를 전국 로스쿨 8곳에서 운영한다.
실패 재기 프로젝트인 ‘아크’도 기획 중이다. 아크는 성경에 나온 노아의 방주를 뜻한다. 불가피한 상황으로 파산하거나 그 직전에 내몰린 기업가에게 투자자가 새로운 벤처기업 지분을 제공하거나 정책 금융기관이 별도의 워크아웃 제도를 마련하는 등의 방식으로 채무를 조정하는 안정적인 구조를 마련하려 한다. 김 대표는 “국가가 나서 창업을 진흥시키는 것만큼 실패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고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스타트업 현장과 가까운 법률가로서 구체적인 대안을 꾸준히 제시하고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2주에 한 번씩 기독교인인 업계 지인과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한 기도회도 열고 있다.
“시대적 과제 해결… 존경받는 로펌 됐으면”
김 대표는 요즘 주5일 중 2~3일을 회사에서 잠을 청할 정도로 눈코 틀새 없이 바쁘다. 낮엔 고객사를 만나고 사내 회의에 참석하고 대학에서 교과 강좌도 한다. 저녁이 돼서야 쌓인 이메일에 답장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돈을 벌겠다는 목적만 있다면 미션은 접는 게 맞다”며 “우리가 가진 지식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개별 기업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문제에서 공통분모로 나타나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션이 ‘존경받는 로펌’으로 남길 바란다고 했다.
“우리는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삶을 살아요. 직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웃은 누구이고,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시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싶습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