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인생 20년’ 다이나믹 듀오 “강퇴 전에 은퇴 없다”

입력 2024-03-30 04:07
아메바컬쳐 제공

“이제는 무거워 살얼음판 위를 달리기엔, 때론 눈치 보며 슬슬 걷는 것도 삶의 지혜.”(10집 수록곡 ‘다시 태어나도’)

다이나믹 듀오의 열 번째 정규 앨범 ‘투 키즈 온 더 블록’에는 인생의 여러 시기를 지나오면서 두 멤버가 느껴 온 감정들이 담겨있다. 이번 앨범은 힙합을 사랑하던 열세 살 소년 김윤성(개코)과 최재호(최자)가 한 팀을 이루고 지난 20년간 살아온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펼친 것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아메바컬처 사옥에서 만난 다이나믹 듀오는 새로운 음악을 선보인다는 기대감에 조금은 들뜬 모습이었다. 개코는 “우리의 역사를 담은 드라마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인 셈”이라고 앨범을 소개했다.

다이나믹 듀오는 티저 이미지에서 실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일부 공개했다. 최자는 “우리끼리는 가끔 술 한잔하면서 옛날이야기를 한다. 제3자에게 얘기한다고 생각하니 그때 어떤 옷을 입었는지, 동네엔 어떤 맛집이 있었는지 등 소소한 것들이 더 생각나더라”며 “개코를 처음 만난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에서 힙합은 생소한 장르였다. 유학생들이 사오는 CD를 듣거나 수입 레코드샵에서 음반을 구해 들었고, 두 장 살 돈이 없어서 한 장을 사서 같이 듣곤 했다”고 회상했다.

앨범의 타이틀곡은 마지막 수록곡인 ‘피타파’다. 인정받는 힙합 아티스트가 됐지만,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겠다는 포부가 담긴 노래다.

다이나믹 듀오의 10집 앨범 ‘투 키즈 온 더 블록’은 이들의 20년 여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힙합을 사랑하던 두 소년의 성장 일기라는 컨셉에 맞춰 두 사람의 실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일부도 공개했다. 배우 이병헌, 정만식이 내레이션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아메바컬쳐 제공

개코는 “어떤 곡이 타이틀곡으로 가장 좋을까 고민하다가 현재의 감정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미래를 생각하는 곡으로 정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며 “긍정적인 느낌의 곡이고 음악의 분위기가 공연하기에도 재밌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번 앨범은 두 사람이 20년간 지나온 다양한 장면들을 담고 있어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느낌을 준다. 배우 이병헌과 정만식 등이 내레이션에 참여해 듣는 이에게 감정을 전달한다.

최자는 “기쁨과 슬픔에 예전만큼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 같다”며 “아주 자극적이고 짜릿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는 불리할 수도 있겠지만 ‘견뎌낼 수 있다’ 보다는 ‘충격을 좀 더 부드럽게 받아낼 수 있게 됐다’는 의미에서 단단해졌다”고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어릴 땐 둘이서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음악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최자는 “당연히 꿈꿨지만 동시에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내년에 다음 앨범을 낼 수 있을까’ 걱정되던 시기도 있었다”며 “기다리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이어갈 수 있는 일인데, 계속 그렇게 되리란 보장이 없다. 그래도 최근엔 우리가 순식간에 잊히는 존재는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이나믹 듀오는 지난해 ‘스모크’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댄스 크루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2’에서 이영지와 협업한 이 곡은 국내 각종 음원 차트를 휩쓴 것은 물론 미국 빌보드가 발표한 ‘2023년 최고의 K팝’에 이름을 올렸다. ‘에이아오’는 발매 9년 만에 ‘역주행’하는 기록을 세웠다.

개코는 “발표한 곡이 많기 때문에 역주행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왜 우린 역주행곡이 없을까. 한 곡 있을 법도 한데’라는 얘기를 나눈 적도 있다”며 “최근 몇 년간 눈에 띄는 히트곡이 없었는데 좋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기분이다. 우린 운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음악에 대한 대중의 기호, 소비 패턴도 바뀌었다. 관록의 아티스트라도 ‘요즘 취향’의 음악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개코는 “지금 나오는 음악들을 공부 반 재미 반으로 계속 들으며 새로운 기법이 나오면 우리식대로 시도해 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최자는 “7집 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하면 노래가 1등을 할 수 있는지,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는데 이제는 공식이 완전히 깨졌다.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개코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말고 우리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씨 뿌리듯’ 발표하다가 어느 순간 사람들이 선택해주면 행운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음악을 해야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개코는 “‘강퇴’에 대한 불안함이 있다. 이 시장이 우리를 원하지 않을 때가 순식간에 올 수 있다는 뜻”이라며 “요즘엔 ‘강퇴 당하기 전에 은퇴하지 말자’ ‘할 수 있을 만큼은 해보자’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20주년을 맞이한 올해의 계획을 물었다. 개코는 “10집 활동에 집중하고, 우리 음악에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분들을 콘서트에 초대해 즐겁게 놀고 싶다”고 말했다. 최자는 “전 세계에 잘하는 아티스트들은 많다. 우리는 다이나믹 듀오에게 자연스러운 음악,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하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이나믹 듀오스러운’ 음악은 뭘까. 최자는 “출중한 랩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음악보다 누구에게나 잘 들리는 음악이 우리답다. 옷으로 비교하자면 너무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 깔끔하게 잘 입었다는 느낌”이라고 정의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