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 특화단지 기반시설 기업부담분에 대한 국비지원 비율을 상향시키는 등 반도체 전쟁 대응을 공식화했지만 간접 지원에 그쳤다. 반면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은 수십조원의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반도체 기업 유치에 속도를 내면서 국가대항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보다 적극적인 대응 없이는 ‘반도체 전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27일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종합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반도체산업 지원책을 내놨지만 기업들이 크게 체감할 만한 내용은 없었다. 정부는 특화단지 국비 지원 최저 비율을 기존 사업비의 5%에서 15%로 10% 포인트 상향했지만 최대 한도(250억원)는 동결했다.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직접 보조금 지원책은 담기지 않았다. 반도체업계는 2047년까지 경기도 남부 일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구축에 622조원을 투자하기로 하는 등 글로벌 경쟁 격화에 대비해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탓에 투자 보조금 제도 도입을 원하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 사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등 반도체 기업인들은 지난달 26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투자 보조금 신설을 공식적으로 건의하기도 했다.
정부는 보조금 지급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정부는 직접 지원 대신 세액공제 확대, 국가산업단지 조성, 인력 양성 등 간접 지원 방안에 집중해 왔다. 직접 보조금 지급 시 대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보조금 지급을 두고 신중한 검토에 나선 사이 주요국은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을 앞세워 반도체 생산기지 구축을 위한 투자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앞서 미국은 2022년 반도체산업을 주요 먹거리로 육성하기 위해 반도체법을 제정했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반도체 생산 보조금과 연구·개발(R&D) 지원금 등 5년간 모두 527억 달러(약 70조1964억원)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일본은 4760억엔(약 4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해 TSMC 공장을 자국에 유치했다. 투자액의 50%에 달하는 금액이다. EU도 정부와 민간기업이 2030년까지 약 62조원을 투자해 유럽 내 공급망 구축에 집중한다. 핵심원자재법, 탄소중립산업법 등 제정 작업에도 돌입했다. 인도는 반도체 기업 유치를 위해 13조원 규모의 직접 보조금 지원을 내걸었다. 중국도 일찌감치 반도체 굴기를 내세워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반도체산업이 국가대항전 개념으로 부상한 만큼 한국도 하루 빨리 보조금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보조금 지급이 글로벌 ‘뉴노멀’이 된 상황에서 소폭의 세액공제 혜택만으로는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직접 보조금 지원 등 국가 차원의 투자 타이밍을 놓치면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완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