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신림동 주택가 골목 사이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니 영아를 안고 힘들게 올랐을 엄마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홀로 걷기에도 힘든 길을, 아이와 곧 이별을 준비하며 오르는 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절박했을까. 가슴이 아려왔다. 베이비박스는 2009년 어느 추운 새벽녘에 굴비 상자에 놓인 아이를 구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2000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한다. 그날도 세 명의 아이가 있었다. 베이비박스로 ‘생명이 지켜진’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많은 아이는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정부는 지난 6월부터 태어났지만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2010~2023년까지의 아동 1만1870명을 모두 조사하고 대책을 수립했다.
오는 7월 19일부터 출생 미신고 아동 발생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제도가 시행된다. 정부와 국회는 여야 합의로 지난해 6월 의료기관 출생통보제, 같은 해 10월 보호출산제 관련 법을 통과시켰다.
의료기관 출생통보제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지연하더라도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하는 제도다. 산부인과 병·의원이 아이의 출생 사실을 보호자 주소지의 시읍면장에게 통보해 출생신고가 됐는지 확인하도록 한다. 만약 1개월 이내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올해 7월 19일부터는 직권으로 출생신고가 이뤄진다.
출생통보제로 병·의원에서 태어난 아동들은 모두 출생신고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출생신고서에는 친생부모의 성명과 주소 등 인적사항이 기재되기 때문에 신분 노출을 꺼리는 임산부에 대한 대책 마련도 요구됐다. 현재도 태아 1000명 중 998명은 의료기관에서, 나머지 2명은 의료기관 밖에서 태어나고 있다. 출생통보제만 시행이 되면 위기 임산부는 오히려 의료기관 출산을 꺼려 산모와 태아가 동시에 위험해질 수 있다. 베이비박스에 오는 아이들의 90%도 의료기관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베이비박스 아이들이 신림동 계단을 오르기도 전에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보호출산제도 같은 날 동시에 도입하기로 했다. 보호출산제는 임산부가 상담 기관에서 충분한 상담을 받은 후에 원하는 경우 산모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해 의료기관에서 출산토록 하는 제도다.
두 제도가 시행되면 의료기관 내에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출산하게 돼 임산부와 아동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제도 시행을 앞두고 위기 임산부에게 각종 서비스를 안내·연계하는 상담 기관을 지정하고, 의료기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간 시스템을 연계하고 있다. 저출산을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는 이미 태어난 아동을 잘 키워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두 제도가 아이를 ‘지켜내는 제도’가 되길 소망한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