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단 납치 대상 1순위가 선교사라는데… 연락 뚝 끊긴 혼돈의 아이티… 선교사가 위태롭다

입력 2024-03-27 03:02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주민이 25일(현지시간) 무장 폭력조직의 방화로 불에 탄 차량정비소 일대를 배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가 갱단의 폭력사태로 무정부 상태가 되다시피 하면서 현지 선교사들 안위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일부 선교사는 현지에 고립되거나 연락이 끊기면서 후원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기도와 지원 요청에 나섰다.

26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이사장 오정현 목사)이 아이티 현지에 설립한 아이티 직업학교는 현재 본부와 연락이 끊겼다. 김철훈 한교봉 사무총장은 “현지에 있는 최상민 이사장과 연락이 되지 않아 현지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어 답답하다”면서 “조속히 현지 소식을 듣고 향후 대책을 마련하려 한다”고 밝혔다. 취재진도 전날 최 이사장에게 ‘어전트(Urgent·긴급한)’라는 제목을 달아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신을 받지 못한 상태다.

한교봉은 2010년 1월 규모 7.0의 강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를 위해 한국교회 차원의 모금을 벌여 구호 및 지원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아이티 직업학교는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북쪽으로 123㎞ 떨어진 카라콜에 2016년 세워졌다. 1만5750㎡(약 4800평) 부지에 강의실과 예배실, 교직원 숙소, 기숙사, 커뮤니티 센터 등이 들어섰으며 아이티 미래세대 양성의 요람과도 같은 곳이다.

현지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들도 연락이 끊긴 상태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지와 직접 소통하는 게 어렵지만 여전히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현지에 남은 선교사들이 있다. 정확한 수를 파악할 수는 없다”고 했다.

현지에서는 선교사와 가톨릭 사제가 갱단의 납치 대상 1순위라는 소문도 돌면서 선교계 안팎에서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달 초 라틴아메리카 정의·평화 교회 네트워크가 국제 평화군의 긴급한 개입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표한 이유다. 이들은 당시 “국제 사회가 아이티 국민의 고통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며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했다.

현지에 고립된 선교사도 있다. 아이티 슬링스톤신학교 학장인 박창환 선교사는 지난 23일(현지시간) 후원 교회와 이사회에 이메일을 보내면서 “이미 며칠 전 미국 정부가 보낸 마지막 구조 헬리콥터가 떠나 완전히 고립됐다. 이곳을 떠날 수 없어 헬리콥터를 타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의 발목을 잡은 건 학생들이었다. 박 선교사는 “총소리가 들리는데도 목회자와 학생들이 학교에 나와 말씀을 배우고 있다”면서 “이들을 보면서 사명을 다시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신학교 식구들과 의지하는 이 시간이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이 마음을 선하게 받아주실 걸 믿는다”고 썼다. 재미교포인 그는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도 메시지를 보내 “갱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지역 깊이 들어가 복음을 전할 기회가 오길 소망한다”며 기도를 요청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