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2월, 국립 현대미술관 청주관이 개관한 이래 매년 한두 번씩 그곳을 찾아가고 있다. 과거 연초 제조창으로 쓰였던 건물에 자리 잡은 청주관은 우리나라 최초 수장형 미술관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과 미술은행 소장품이 보관되어 있다. 귀중한 것을 고이 간직하는 창고라는 뜻의 수장고는 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나 유물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공간을 지칭한다. 수장고는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도록 특별하게 설계되어 있다. 현대미술관 청주관 1층 개방 수장고에는 국내외 유명 작가의 조각품들이 있고 2, 3층 보이는 수장고에는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등 근현대 회화 거장의 작품 900여 점이 보존되어 있다.
수장형 미술관은 일반적인 기획 전시와는 달라서 작품이 바뀌지 않는다. 5년 전, 2년 전, 6개월 전 방문했을 때도 있었던 작품은 어째선지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든다. 내가 목조각 작업에 매료될수록 눈이 트이는 건지 꾸준한 노력 덕분에 작은 성찰이라도 하는 건지 전과 똑같은 작품이 한 점도 없다. 김복진, 권진규, 최만린, 이우환, 류인 등 굵직한 근현대 작가의 작품 앞에 서노라면 그들의 정신세계에 조금 더 다가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품을 우러러보며 언제쯤 저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움츠러들기도 했고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얼마 전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저자인 릭 루빈의 말을 듣고서 생각이 바뀌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최고의 작품을 보며 행복을 느끼고 그만큼 잘하고 싶다고 자극받은 것은 경쟁심이 아니라 협업이다.” 매해 수장고를 방문해 전율을 느끼게 하고 눈빛을 반짝이게 하는 작품들을 가까이 보면서 시대의 작가들과 교감하며 협업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즐거워지고 일에 의욕이 넘쳤다. 흠모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한데 모인 수장고는 세상 제일 재미나는 배움터이자 작업실이 되었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