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고무 관련 제조업을 운영하던 양모(56)씨는 지난해 말 사업체를 정리했다. 소규모 공장이지만 한때 많게는 10여명의 직원과 일하며 착실하게 실적을 냈다.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무사히 넘기면서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2015년 문을 열어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직접 폐업 신고를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양씨는 “코로나 때 대출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다 그랬다. 그런데 그게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더라”며 “(엔데믹 이후) 이자 부담이 배로 늘면서 직원을 줄여가며 방법을 찾아봤지만 경기가 나빠져 발주가 줄면서 완전히 길을 잃었다”고 말했다.
2022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3고’(고금리·고환율·고물가) 현상에 불황이 짙어지고 있다. 팬데믹을 이겨낸 중소기업들이 고금리와 불황의 벽을 넘지 못하며 문을 닫고 있다. 아직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언제 터져도 문제되지 않을 ‘대출 이자 압박’의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계의 위기 상황은 수치로 확인된다. 25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법인 파산 신청은 1657건으로 2022년 1004건에서 65.0% 증가했다. 파산 신청 법인은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10년 전인 2013년 법인 파산 신청(461건)과 비교하면 3.6배나 증가한 수치다.
올해 들어서도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악화되는 추세다. 지난 1~2월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은 28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05건보다 40.5% 늘었다. 2분기 이후 경제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올해는 작년보다 파산하는 중소기업이 더 증가할 것이라는 산술적 전망이 가능하다.
법인 회생(지난해 신청 건수 1024개)보다 파산을 신청한 기업이 더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재기의 기회를 얻으려 하기보다 파산으로 정리하려는 기업이 코로나19 이후 증가하는 추세다. 자칫 대규모 파산 사태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팬데믹 이후 계속해서 기업대출을 늘려온 게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1006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말 1003조8000억원이던 대출 잔액 규모는 3개월 만에 2조4000억원 늘었다.
줄파산, 줄도산 위기는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지난 1월 신규 취급액 기준 평균 5.28%다. 2021년 1월 2.9%였던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2022년 1월 3.52%로 뛰었고, 2022년 10월 이후 16개월 연속 5%대를 유지하고 있다.
경기도 김포에서 금속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최근 이자 부담이 작년보다 20%가량 늘었다고 했다. 지난해 이자로만 5억원 정도 나갔는데 올해는 6억원으로 늘었다. 김씨는 “지금은 아랫돌 빼서 윗돌 막는 실정이다. 수익성은 나빠졌는데 이자 부담은 늘고 있으니 심리적 압박도 많이 커졌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부는 정책자금 지원과 함께 재도약을 할 수 있는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소기업계에서는 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김씨는 “저금리 혜택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담보가 있는 기업들이나 받을 수 있는 거라 정작 필요한 기업에는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며 “조금만 수혈이 되면 정상화되는 기업들을 지원하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10곳 중 9곳 이상이 내수에 의지하는 실정이라 단기간에 상황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한계 상황을 버티던 기업들이 기다리다 결국 청산하게 되는 것”이라며 “글로벌 경기가 회복돼야 내수 부진도 벗어날 수 있는데 현재로는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수정 김성훈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