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빽도 안 통하는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말투나 표정은 얄미운데 기분은 통쾌하다. 시종일관 자신만만한 태도에, 일반인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들을 돈으로, 배경으로, 인맥으로 척척 해내는 게 재수 없기도 한데, 그게 또 나쁜 놈을 잡는 데 진심이어서 나온 행동이라 밉지가 않다.
안보현은 겉으론 재수 없고 철없는 재벌 3세지만, 가슴 속엔 엄마의 죽음이란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진이수를 매력적으로 빚어냈다. 지난 19일 ‘재벌X형사’의 종영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안보현은 “이수의 행동이 정말 밉상이고 ‘골때리고’ 어떻게 저런 놈이 있나 생각도 들지만, 그 안에서도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캐릭터라고 느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수가 좋았다”며 “시청자분들에게도 이수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꼴불견이지만 좋아해 줄 수밖에 없는 아픈 손가락 같은 애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재벌X형사’는 철없는 재벌 3세 진이수가 예기치 못한 사건 때문에 낙하산 형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도망치는 범인을 헬기로 뒤쫓아가 붙잡고, VIP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프리패스’로 들어가 범인을 잡는 등 일반 형사라면 할 수 없었을 ‘플렉스’ 수사기가 펼쳐진다.
진이수란 캐릭터는 안보현에게도 생소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안하무인에 버릇까지 없는 이수의 성장기를 담아내는 드라마인 만큼 초반엔 더 재수 없어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여기엔 의상과 헤어스타일도 한몫했다. 앞머리를 다 넘기고 두 가닥만 내려놓은 머리에, 하와이안 셔츠와 나팔바지를 입는 식이다. 1화에서 경찰서에 붙잡혀온 상황임에도 형사에게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부탁합시다. 여기 몇 명이야?”라고 묻는 대사는 이수의 재수 없음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가 만든 대사였다.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려고 자신의 손과 발이 돼주는 비서 최정훈(김명수)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애드리브를 넣었다. 이런 면이 이수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안보현은 처음 SBS 금토극 ‘사이다 히어로’의 계보를 잇게 된 게 큰 부담이었지만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스스로 늘 채찍질한다는 그는 “늘 운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항상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어느 정도 밑천이 있어도 좀 더 모아두려고 하는 편”이라며 “그래서 10년 동안 두 달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인복은 있는 것 같다. 그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했다. ‘재벌X형사’는 안보현에게도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었다. ‘마임네임’에서 함께 했던 김바다 작가와 그의 데뷔작인 ‘히야’의 홍승표 촬영감독을 다시 만난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복싱 선수로 활동하다가 모델을 거쳐 배우가 된 안보현은 배우로서 10여년을 달려오며 지금까지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표했다. ‘이태원 클라쓰’의 안하무인 재벌 장근원부터 ‘유미의 세포들’의 구웅, ‘군검사 도베르만’의 도배만 등 다양한 캐릭터를 오갔던 안보현은 앞으로도 작품 속 인물들의 간극을 크게 두며 다양한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안보현은 “많은 분이 캐릭터 이름으로 외워주시는 것들이 제게는 큰 힘”이라며 “지금처럼 똑같이, 아직 해보지 않은 것들이 더 많으니 그런 부분에 도전하며 배우로서 조금씩이나마 계속 성장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