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은행 금 사들이는데, 고개 젓는 한은

입력 2024-03-26 04:05
게티이미지뱅크

각국 중앙은행이 앞다퉈 금을 쌓고 있는 와중에 한국은행은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 10년간 금을 전혀 사들이지 않은 한은은 여전히 금 매입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자도 없고 유동성도 낮은 금에 큰 투자 유인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25일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은 지난 2년 동안 연간 1000t 이상 금을 매입했다. 2022년 1082t을 사들이며 신기록을 세웠고, 2023년에는 1037t의 금을 사들였다. 2021년(450t)에 비해 배가 넘는 수치다.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인 건 경기침체 우려와 지정학적 리스크로 경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안전자산인 금을 선호하는 심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터키 등 신흥국의 매수가 급격히 늘었다. 각국 중앙은행은 금 매입 이유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가치가 오르고 있고 자산의 다각화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한은은 요지부동이다. 한은은 2011년 40t, 2012년 30t, 2013년 20t의 금을 사들였다. 이후 지난해까지 금 보유량을 104.4t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금 보유량 순위는 2013년 32위에서 지난해 36위로 하락했다. 외환보유액 대비 금 비중은 1%대로, 미국(69.6%) 독일(68.7%) 이탈리아(65.5%) 프랑스(67.1%) 등에 한참 못 미친다.

최근 국제 금값이 사상 최고치에 근접하고 있지만 한은은 금 매입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외환보유액 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안정성’과 ‘유동성 확보’인데 금은 달러화 등 다른 자산에 비해 매입 유인이 없다는 게 한은 설명이다. 한은 외자운용원은 지난해 ‘한은 보유금 관리 현황 및 향후 금 운용 방향’ 보고서에서 “금은 안정성은 매우 높지만, 유동성이 미 국채의 5.5% 수준에 불과하다”며 “금 보유 확대보다는 달러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게 나은 선택”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외환보유액의 약 70%를 달러 자산으로 운영 중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금은 이자를 주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손실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금값의 추가 상승 여력이 불확실하다는 점도 금 투자를 꺼리게 하는 이유다. 한은은 10년 전 마지막 금 매입 당시 ‘상투를 잡았다’는 이유로, 이후 몇 년간 투자에 실패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금값이 고점으로 평가되는 현 상황에서 금 매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