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불에 액셀’… 노인 운전사고 급증, 묘수 없나

입력 2024-03-26 04:05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게티이미지 뱅크

직장인 양모(35)씨는 지난해 12월 교통사고를 당했다. 직장 동료를 조수석에 태우고 퇴근하던 양씨는 좌회전 신호를 받고 정상 주행 중이었다. 그때 반대편에서 빠르게 직진해오는 차량과 충돌했다. 몇 초만 늦었어도 조수석이 그대로 받혀 인명피해가 날 수 있었다. 양씨의 차는 반파됐다.

상대 운전자 A씨는 83세 노인이었다. 그는 “분명히 파란불을 보고 직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근처 CCTV 분석 결과 빨간 신호등이 켜졌지만 A씨는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밟은 것으로 나타났다.

A씨의 사례처럼 고령자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80대 운전자 B씨가 서울 강남구 구룡터널 교차로에서 7중 추돌사고를 냈다. 지난달 29일 서울 연신내역 인근에선 79세 운전자가 8중 추돌사고를 일으켜 1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비중 증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 분석 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전체 교통사고 중 고령 운전자(65세 이상)가 낸 사고의 비중은 13.8%였다. 2022년에는 이 수치가 17.6%까지 높아졌다.

80대 운전자의 사고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의 ‘노인 운전자 연령대별 교통사고 현황’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 중 80대 이상은 2018년 7.4%에서 2022년 8.2%로 늘어났다. 경찰은 고령화로 노인 운전자 수도 큰 폭으로 늘었다고 설명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25일 “고령 운전자 수는 2019년 대비 40%가량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2018년부터 노인이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현금성 혜택을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다만 반납률은 해마다 2%대에 그친다. 노인들은 생계 유지와 자존심 등을 이유로 면허 반납을 꺼린다. 나아가 고령자 운전면허 규제는 민감한 주제라 정치권도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 고령자의 이동권을 제약하고, 또 택시와 화물운송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이 안전 운전의 필요성과 고령 운전의 위험성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운전 적성검사(갱신)와 달리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평가 과정에 의사가 참여하는 등 정밀하게 진행된다”며 “노인들이 단지 나이 때문에 운전 제약을 받는다는 억울함이 들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고령자 운전의 위험성을 계속 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