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전래동화 ‘신데렐라’를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귀족의 딸로 태어난 신데렐라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게 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재혼해 계모와 두 딸을 새 가족으로 맞게 되는데, 신데렐라는 이들로 인해 가정 안팎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신데렐라란 이름은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여자’란 뜻입니다. 신데렐라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립되고 소외된 환경에서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이웃들은 교회에도 적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욘 1:1~2)
아밋대의 아들인 요나는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 기원전 8세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중보의 역할을 하며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당시 근동 지역의 강대국이자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욘 1:3)
하지만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니느웨와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원수 나라의 수도인 니느웨를 살리는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겉보기엔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신실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요나는 영적 사각지대에 머물던 연약하고 딱한 사람이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예수님은 사람들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예수님과 가까이 지냈던 제자들은 오히려 그 빛의 비추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자 중에서도 요나와 마찬가지로 영적 사각지대에 숨겨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가룟 유다입니다.
교회 안에는 고목처럼 신앙의 뿌리가 깊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에도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리는 등 영적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는 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눈을 가리는 죄인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영적 메시지가 수신되지 않는 영적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 3:8~9)
신데렐라가 고립된 환경 속에서 쥐나 새들과 소통했던 것처럼, 하와는 선악과나무의 그늘에서 사탄과 교제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빛 가운데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우린 이렇게 반응해야 합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사 6:8) 영적 사각지대에서 벗어나는 담대한 결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홍권세 울산 성산교회 목사
◇홍권세 목사는 연세대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웨이크사이버신학원에서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울산 성산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어떻게 사랑해 주셨는지 그 놀라운 사랑을 소문내고 드러내는 종이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