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의 간증을 읽고 ‘예수 잘 믿었더니 큰 기업 회장도 되고 부자가 되더라 그러니 나도 예수 잘 믿자’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겠다. 부디 기복 신앙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몇 해 전 새해 아침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갔었다. 그곳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100여년 전 복이 넘치던 미국 캐나다 호주 땅에서 복을 빌어(祝福) 모아서(蓄福) 쌓아놓고(築福) 누리지 않고 도리어 복을 차서(蹴福) 복을 쫓아버리고(逐福) 지독하게도 박복(薄福)한 조선 땅에 와서 복을 줄여서(縮福) 사셨던 분들이 묻혀있는 곳이라고.
참된 크리스천이라면 받은 복을 누리기만 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사도 바울도 그랬고 열두 제자도 복을 차버렸다. 그 대가로 목숨을 잃었고 가족을 챙기지 못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제자도의 정신을 따라 선교사님들도 세상의 복을 차버리고 조선에 왔다. 목숨을 잃었고 심지어 어린 자녀들을 풍토병으로 잃었다. 그런 선교사들의 위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됐다.
나는 애터미를 창업하고 지금까지 사업이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해 본 기억이 없다. 다만 주시는 물질을 주님의 뜻에 맞게 잘 쓸 수 있는 지혜를 구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물질에 휘둘리지 않고 기부를 하느냐고 묻는다. 내가 전혀 돈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좋은 집에 살고 있고 젊은 시절 꿈이었던 최고급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닌다. 스포츠카도 있다. 돈은 쓸 만큼 쓰고 산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데는 한없이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특히 남자들은 죄짓지 않으면 돈 쓸 일이 별로 없다. 집 있고 차 있고 양복 몇 벌 있으면 된다. 여자들은 돈 쓸데가 좀 더 많기는 하다. 그래서 나는 여자가 돈을 많이 쓰는 것은 무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의 아내는 변변한 보석도 없이 산다. 큼지막한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 선물하겠다고 백화점에 모시고 가면 만지작거리다 도무지 못 사겠다고 한다. 결혼반지도 못 해줬던 내 마음에 맺힌 한을 풀어보려는데 아직 기회를 주지 않는다. 대신 비슷한 크기의 큐빅 반지를 산다. 회장 사모님은 큐빅 반지를 끼어도 다이아몬드로 아는데 굳이 비싼 것을 살 필요가 없단다.
나의 헌금과 기부는 100여년 전 선교사님들의 삶에 비하면 내세울 게 하나도 없다. 목숨이나 전 재산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성경에는 분명 ‘힘에 지나도록’ 하는 게 기준인데, 나는 주시는 것 중에서 힘닿는 대로 드리고 있을 뿐이다. 역경의 열매를 쓰고 있지만 글을 쓰다가도 자꾸 망설여지고 숯불을 머리에 올려놓은 듯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리의 가는 길에 주님 공급하시는 손길이 있을 줄 믿는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주님과 사도들과 선교사들께서 가셨던 길을 기꺼이 가야 한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에 처했을 때 이렇게 고백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그들의 고백에서 ‘건져내시리이다’보다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에 더 큰 믿음이 보인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