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의 세계 교회사] 잉글랜드 문명 완성시킨 킹제임스성경

입력 2024-03-26 03:06

1625년 3월 25일 영국의 제임스 1세(재위 1603~1625)가 별세했다. 제임스 1세는 1603년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죽자 후계자로 지명됐다. 그해 7월 25일 왕위에 올라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아일랜드의 공동 왕이 됐다. 제임스 1세는 장로교가 강한 스코틀랜드 출신 왕이었지만 왕권신수설을 강력하게 신봉했고 장로교도와 청교도를 ‘해충’이라 부르며 국교회로의 개종을 강요했다. 그는 1604년 국교회와 청교도 등의 종교계 대표자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는데 청교도 대표로 참석했던 존 레이놀즈가 새로운 성경 번역을 제안하자 선뜻 동의했다.

그는 자신의 지시로 영어 성경이 출판되면 백성의 정치 지도자요 영적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을 알았다. 그래서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의 가장 뛰어난 학자들에게 번역 작업을 맡기고 나중에 주교들의 검토를 거쳐 추밀원에게 제출하게 한 뒤 최종적으로 ‘왕의 재가를 받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제임스 1세는 54명의 학자를 임명하고 그들을 6개의 위원회로 나누었다.

1611년 출간된 킹제임스성경(KJV)은 백지상태에서 번역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지침은 “최대한 주교 성경을 따르되 다른 성경의 텍스트가 주교 성경보다 낫다고 생각되면 그 번역판(틴데일성경 매튜성경 커버데일성경 대성경 제네바성경)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번역가들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원문 텍스트를 참고했다. KJV은 서문에서 “여러 좋은 번역판들로부터 으뜸가는 번역판 하나를 만들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KJV은 틴데일과 커버데일의 표현을 상당히 많이 포함하게 됐다.

KJV은 잉글랜드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영어가 온전한 언어로 형성되도록 도왔고 영문학에 배경을 제공해주었고 음악을 만들도록 고무했다. ‘레 미제라블’ 저자인 빅토르 위고는 “잉글랜드는 두 권의 책, 곧 성경과 셰익스피어를 갖고 있다. 잉글랜드는 셰익스피어를 만들었지만 성경은 잉글랜드를 만들었다”고 했다.

1667년 3월 27일 영국 시인 존 밀턴이 인류의 창조와 타락을 다룬 서사시 ‘실낙원’을 출간했다. 구약성서를 소재로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을 묘사해 인간의 ‘원죄’를 주제로 하고 있다. 작가는 1640년경부터 서사시를 쓸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정치적 위기로 집필할 기회를 잃고 거의 20년간 청교도혁명에 휩쓸려 시국적인 논쟁에 정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가 참여한 공화제가 실패하고 그 자신도 실명하면서 불운에 빠지게 되자 다시 시작 활동을 결심, 이 웅대한 규모의 작품을 구술로 완성했다.

1,2권에서는 하나님에 반역해 지옥에 떨어진 사탄이 낙원에 사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며 복수하려는 것을 그렸고, 3권에서는 천상(天上)의 소식, 4권에서는 에덴 낙원의 축복을 노래했다. 5∼8권에서는 천사 라파엘이 아담에게 사탄의 반역과 천지창조의 전말을 이야기하며 경고하지만 인류의 시조 하와는 9권에서 뱀으로 변신한 사탄의 유혹에 지고 만다. 10권에서는 죄를 지은 후 찾아오는 재화(災禍), 11∼12권에서는 인류의 역사와 구원의 예언에 관한 것이 묘사되면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낙원을 떠난다.

1885년 3월 28일 구세군이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조직됐다. 조지 스콧 레일튼 사관과 7명의 여성 구세군 사관들이 1880년 뉴욕에 도착해 미국 내 조직 확장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적대감과 폭력에 시달렸지만 1883년까지 구세군은 12개 주로 확장할 수 있었다. 1886년 구세군 대표단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그로버 클리블랜드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신상목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