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부와 의사단체 간의 갈등에 개입하면서 최악의 충돌을 막고 대화의 여지를 마련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한 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에 대한 유연한 행정처분을 강력하게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해 달라는 의견을 밝힌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같은 의대 교수들의 입장을 대화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고 판단해 의료공백 사태 이후 처음으로 ‘원칙론’을 접고 ‘유연한 처리’를 당부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4일 “윤 대통령이 전공의 면허정지 행정처분에 대해 유연성을 지시하면서 정부와 의사단체가 대화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됐다”면서 “정부와 의사단체 간의 의견이 조금씩 접점을 찾아 가고 있다”고 밝혔다.
당초 정부는 오는 26일부터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하며 병원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의 면허를 26일부터 정지시킬 방침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면허정지 처분이 지연될 전망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유연하게 처리할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다”며 “당과 협의를 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유연한 처리’ 지시는 지난달 의대 정원 증원 발표 이후 고수하던 ‘원칙론’에서 처음으로 벗어난 것이다. 성태윤 정책실장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KBS에 출연해 미복귀 전공의들의 처분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행정적인 처분이나 사법적인 처분이 나가지 않는 것을 희망하지만, 법과 원칙이 있기 때문에 절차를 밟아나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의 중재자 역할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번 조치는 한 위원장의 요청을 윤 대통령이 수용하는 모양새로 이뤄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26일부터 시작되는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처분을 강행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예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면서 “한 위원장의 요청 형식을 통해 명분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총리실은 이날 윤 대통령의 지시 직후 정부와 의료계 간 ‘건설적 대화’ 진행을 위한 실무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조만간 한덕수 국무총리와 의사단체 관계자들이 공식적으로 마주앉을 자리가 마련될 전망이다. 한 총리는 그동안 병원장, 의대 교수들을 여러 차례 물밑 접촉해 의료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정부 측 입장을 설득해 왔다. 정부 관계자는 “상대방이 있는 문제라서 단언하긴 어렵지만, 이러한 노력들의 성과가 조만간 드러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사단체와의 공식 대화가 성사된다 하더라도 ‘2000명 증원’ 원칙은 수정하지 않을 방침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미 대학별 의대 정원 배정이 모두 끝났기 때문에 증원 규모를 다시 논의하거나 조정한다는 것은 현장이 대혼란에 빠지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증원 규모에 대해 “이미 현실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