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못잖게 삶이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사회라면

입력 2024-03-25 21:26

서울대 사회학과 김홍중 교수는 산업화와 IMF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의 죽음에 대한 부정성은 한층 강화됐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은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마저 착취하는 경제적 생존, 갑질을 비롯한 넘쳐나는 과시와 차별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사회적 생존, 질병과 죽음을 넘어 오래 살고자 하는 생물학적 생존에 몰두하고 있다.

신뢰와 연대가 소실된 사회에서 고립된 개인은 생존의 위험과 공포를 전적으로 홀로 떠안아야 한다. 전남대 사회학과 정수남 교수는 이를 ‘공포의 사사화(私事化)’라고 말한다. 공포가 사사화된 사회는 생존을 공동체가 아닌 개인에게 책임 지운다. 때문에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외부적으로 전문가 체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내부적으로는 괴로움에 무뎌짐으로써 공포에 순응하며 살게 된다. 외부 전문가 체계에 의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므로 자본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또 내부의 안정을 위해 타인의 고통은 외면하고 자아의 불안, 특히 죽음에 대한 불안은 아예 망각한 채 살아간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피로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더 잘할 수 있고 더 성공할 수 있다는 긍정을 강요하면서 자신을 착취하고 있다고 말한다. 쫓기는 삶에 피로한 현대인은 불안을 잊기 위해 군중 속에서 쾌락을 좇을 뿐 고독 속에서 죽음을 사유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생존 자체가 공포여서 굳이 죽음의 불안을 마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삶엔 늘 불예측성이 함께하고 양지와 음지가 공존한다. 하지만 생존만을 절대시하는 회피와 억압의 방어 기제는 강박적으로 인생의 화려함과 밝은 면만 좇게 해 균형 있는 삶의 시각을 방해한다. 특히 자신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초조함은 자신을 늘 약자로 여겨 타인에 대한 연민을 차단하고 자아를 우선시하는 도덕적 이기주의에 빠지게 한다.

경쟁은 무한해 살아가는 시간에 비례해 지치게 되고, 철학이 없는 성공은 금세 허무해지며, 실패에 대한 무시와 모멸은 공포스럽기에 결국 삶의 포기라는 도피처를 선택하게 된다. 젊음 숭배와 생존 경쟁에서 빠져 나와 의미 있는 삶의 철학을 얻지 못한다면 허무한 삶의 공포를 견디지 못해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삶의 포기를 요구하게 될 지도 모른다.

가톨릭의대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