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33) 테라폼랩스 대표의 한국 송환이 보류됐다. 한국과 미국 중 어느 쪽이 권씨 신병을 확보하게 될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몬테네그로 대검찰청은 지난 21일(현지시간) 권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한 법원 판단에 절차적 문제가 있다며 대법원에 적법성 판단을 요청했다. 현지 검찰은 범죄인 인도국 결정권은 법무장관의 고유 권한이라면서 법원이 월권해 권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몬테네그로 대법원은 검찰 요청에 따라 권씨의 한국 송환을 잠정 보류했다. 위조 여권 사건으로 선고받은 징역 4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23일 출소한 권씨는 외국인수용소로 이송됐다. 그는 이곳에서 대법원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게 된다.
권씨가 미국으로 인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법원이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면 법무장관이 권씨 인도국을 결정하게 된다. 안드레이 밀로비치 법무장관은 “미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 파트너”라고 언급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몬테네그로 정부가 선호한 대로 권도형을 미국으로 인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분석했다.
‘테라·루나’ 사태 피해자들은 권씨가 처벌이 엄한 미국으로 송환되길 원한다. 법조계에선 권씨가 한국으로 최종 송환돼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 자본시장법 위반(사기적 부정거래) 혐의 처벌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검찰은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루나가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는 의견이지만, 국내 사법부가 가상화폐의 증권성을 인정한 사례는 아직 없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해 2월 테라폼랩스 공동창립자인 신현성 차이코퍼레이션 전 대표에 대한 재산 몰수보전 청구 항고를 기각하며 “검사 제출 자료만으론 루나 코인이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기 혐의 입증도 ‘첩첩산중’이다.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변호사는 “사기죄는 기망으로 인한 피해자의 재산 처분 행위가 있어야 되는데, 많은 피해자들이 가상화폐를 권씨로부터 산 게 아니라 거래소에서 샀기 때문에 처분 행위 입증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전 대표 측 변호인도 재판에서 “한국에서 가상화폐 결제 서비스를 금지한 규제는 애초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투자자들을 속이려 한 건 아니라는 취지다.
권씨가 한국으로 올 경우 신속한 재판을 받을지도 불투명하다. 신 전 대표는 지난해 4월 기소됐지만 반년 만인 지난해 10월 첫 공판이 열렸고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다.
신지호 송태화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