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현장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테러범들이 산책하는 것처럼 침착하게 총을 쐈다”고 증언했다. 러시아 록밴드 ‘피크닉’의 콘서트를 보러 온 관객들은 공연을 앞두고 들린 총성을 쇼의 일부라고 생각했고, 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들을 본 뒤에야 혼비백산하며 달아났다.
아내와 함께 크로커스 시티홀을 찾은 58세 남성 안드레이는 2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전날 공연장에서 테러범들은 천천히 침착하게 서두르지 않으면서 자신 있게 총을 쏘며 복도를 걸어갔다”며 “산책을 나온 것처럼 걸으며 총격을 가했다. 한 명은 탄약이 떨어지자 멈추더니 침착하게 탄창을 교체했다”고 말했다.
2층 카페에 있던 안드레이 부부는 총성을 듣고 주변 기둥 뒤로 숨었다. 그는 “(1층 로비에 있던) 테러범들이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지 않기만을 기도했다”고 말했다. 두 차례 폭발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를 때 누군가 “불이야”라고 외치자 사람들이 대피했고, 그때 안드레이 부부도 건물 밖으로 나와 살 수 있었다.
27세 생존자 아리나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 쇼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 10대 소녀는 시신 틈에서 죽은 척하며 목숨을 건졌다. 그는 러시아 국영 RT방송에 “피를 흘린 채 바닥에 엎드려 죽은 척했다”며 “테러범들은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을 향해서도 총을 쐈다. 내 옆에 누워 있던 여자아이는 죽었다”고 전했다.
테러범들은 원형극장의 1~3층 객석은 물론 탈출로인 비상계단, 주변 화장실까지 샅샅이 수색하며 총격을 가했다. 현지 매체 바자는 “사람들이 피신한 화장실에서 시신 28구, 비상계단에서는 14구가 나왔다”며 “화장실에선 아이들을 껴안은 채 숨진 어머니 시신도 발견됐다”고 전했다.
국제사회는 1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살해된 이번 테러를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외교부도 이번 테러의 배후를 자처한 이슬람국가(IS)를 비난했다. 닷새 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축전을 보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위로 전문을 발송했다. 김 위원장은 “온갖 형태의 테러를 반대하는 공화국의 입장은 시종일관하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극악무도한 테러 행위는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