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 잦거나 경련·실신했으면 젊어도 뇌영상 찍어보길”

입력 2024-03-25 21:32 수정 2024-03-25 21:52
모세혈관 없이 동맥과 정맥 얽혀
뇌압 오르고 혈류 장애 일으켜
10~30대 뇌출혈 원인 중 1순위
방사선 수술로 불리는 ‘감마나이프’
2차 수술 포함땐 완치율 90% 이상

경희대병원 최석근 신경외과 교수가 뇌혈관과 동정맥 기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뇌출혈은 40대 이후 연령대에서 주로 발생한다. 고지혈증이나 고혈압 등 생활습관 질환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10~30대에 뇌혈관이 터졌다면 대부분 뇌혈관의 구조적 기형이 원인이다. 특히 ‘뇌동정맥 기형’은 젊은 나이에 뇌출혈을 일으켜 다양한 후유증과 장애,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경희대병원 뇌혈관 클리닉 최석근 신경외과 교수는 25일 “대다수가 자신의 질환을 모르고 있다가 두통이나 경련, 뇌출혈 등으로 인해 병원을 찾고 나서야 진단받는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또 “젊다고 방심하지 말고 심한 두통을 종종 느끼거나 실신이나 경련을 일으킨 경험이 있다면 꼭 뇌 영상 촬영을 해보라”고 권고했다. 뇌혈관 기형 질환과 방사선 수술인 감마나이프 치료의 권위자인 최 교수에게 해당 질환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뇌동정맥 기형’이라는 병명이 생소하다.

뇌 MRI 영상에서 실타래처럼 뭉쳐있는 동정맥 기형(붉은 원 안)의 모습.

“이는 뇌의 특정 부위에 모세혈관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모세혈관은 동맥을 통해 전달된 산소와 영양소를 신체 조직에 전하고 대사활동으로 생긴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수거해 정맥에 전달하는 연결 통로 역할을 한다. 동맥의 높은 압력을 완화해 정맥의 부담을 덜어주는 기능도 한다. 이런 모세혈관 없이 동맥과 정맥이 직접 만나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상태가 동정맥 기형이다. 뇌뿐만 아니라 폐·간 등 주요 장기에도 생길 수 있다. 뇌동정맥 기형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작은 혈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치명률이 높기 때문이다.”

-유전 질환인가.

“선천적 질환이지만 유전 질환은 아니다. 수정란이 분화하면서 태아가 될 때 혈관 분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발생한다. 선천적 뇌혈관 기형에는 이 외에도 해면상 혈관종, 정맥혈관 기형, 모세혈관 확장병증 등이 있지만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최 교수는 “한쪽 뇌를 차지할 정도로 동정맥 기형이 크면 엄마 뱃속에서도 초음파검사로 확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는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증상은.

“모세혈관 없이 동맥과 정맥으로 바로 혈류가 이어지면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 이런 비정상적 혈액순환 과정이 지속되면 혈관 덩어리가 만들어지고 주변 뇌를 압박해 뇌압이 올라간다. 더 나아가 정맥 내 압력 상승으로 혈류 장애가 초래된다. 이는 극심한 두통, 한쪽 신체 마비, 의식 저하, 혼절·쇼크를 초래할 수 있다. 뇌전증(간질) 발작이 있을 수 있고 혈관 특정 부위에 압력이 오래 쏠리면 뇌출혈이 발생한다.”

-발병 연령대가 젊은데.

“뇌동정맥 기형 크기에 따라 증상이 뒤늦게 발현될 수 있으나 혈관 확장이나 혈관 세포 증식으로 기형 구조가 점점 발달하고 커진다. 10대 후반이나 20대에서 뇌출혈이 발생해 응급실로 실려 오는 경우가 많다. 모든 환자에게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평생 무증상으로 살 수도 있다.”

-꼭 치료해야 하나.

“일부 연구에선 악성 종양이 아니기 때문에 무증상일 경우 그대로 둬도 된다는 보고가 있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뇌출혈 위험이 있으므로 치료받는 게 바람직하다. 기형의 크기가 작고 모양이 단순할수록 완치 가능성이 크다. 물론 상황에 따라 적극적인 치료 대신 경과를 지켜봐야 할 때도 있다. 기형이 한쪽 뇌 전체에 넓게 퍼져 있거나 정상 조직이 기형 사이에 많이 분포된 경우다. 범위가 넓으면 주로 경련을 일으키기 때문에 예방 약물로 증상을 조절한다.”

-치료는 어떻게.

“방사선 수술로 불리는 ‘감마나이프’가 우선 고려된다. 환자 머리에 헬멧을 씌운 뒤 방사선의 일종인 감마선을 쏘아 문제의 혈관 기형을 태우는 방식이다. 방사선을 통과시킬 병변을 정확히 설정해야 한다. 병변 면적을 너무 크게 잡으면 주변 정상 혈관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데이터의 축적도 중요하다. 감마나이프 수술을 받았다고 기형이 바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 되는 혈관의 벽에 감마선을 쬐면 상처가 생기고 거기에 새살이 돋으며 혈관이 서서히 막히며 없어진다. 장기간에 걸쳐 문제 혈관이 막히게 되면 혈류는 다른 혈관으로 방향을 자연스럽게 바꾼다.”

최 교수는 “1992년 국내 처음 감마나이프 장비를 도입한 이후 30여년간 축적된 데이터를 보면 감마선은 평균 5년간 효력을 발휘하고 81.3%의 완치율을 보였다. 2차 수술까지 포함하면 90% 이상 완치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치료 옵션도 있나.

“뇌 표면에 기형이 생겼거나 출혈이 있을 땐 두개골을 열고 병변을 제거하는 ‘미세수술’을 한다. 기형을 직접 없애기 때문에 즉각 효과를 볼 수 있으나 발병 위치에 따라 일부 뇌 기능 손상이 있을 수 있다. 또 혈관 안에 삽입된 작은 관으로 젤라틴 같은 물질을 넣어 혈관을 막는 ‘색전술’은 완치율이 25%밖에 안 돼 보조적으로 활용된다.”

최 교수는 “뇌동정맥 기형은 환자마다 발생 위치, 크기, 혈행 구조 등이 달라 한가지 치료법에 전문화돼 있다면 치료 성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모든 치료법에 경험 많은 의료진을 찾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