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 함께 써내려가자 / 너와의 추억들로 / 가득 채울래” 카페에도, 식당에도, 방송 프로그램에도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이 노래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2019년에 발매됐지만, 대중이 이 노래를 많이 듣기 시작한 건 2022년, 2023년이었다. 현재도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멜론에선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가 톱100 차트 19위에 올라있다. 이 곡과 함께 주목받은 ‘예뻤어’는 2017년 발매곡이지만 같은 차트에서 18위다(21일 기준).
이 노래를 부른 밴드 데이식스(성진, 영케이, 원필, 도운)는 아이돌들의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군백기’(군대+공백기)에 오히려 더 주목받으며 역주행의 역사를 썼다. 데뷔 9년 차에 정점에 선 셈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계기는 멤버들이 군대에서 복무 중이던 2022년 국군의 날 74주년 행사로 이뤄진 KBS ‘불후의 명곡’ 무대였다. 멤버들은 공백기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제대 시기를 최대한 맞추기 위해 각기 다른 군에 입대했다. 그렇게 영케이는 카투사, 원필은 해군, 도운과 성진은 육군이 됐다. 그러다 먼저 제대한 성진을 제외한 멤버 세 명이 각자 다른 군복을 입고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불렀는데, 이 무대가 큰 화제가 됐다. 청춘을 노래하는 곡을 군복을 입은 멤버들이 부르자 ‘낭만적’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멤버들은 이 같은 역주행을 보면서 감사한 한편, 얼떨떨했다고 했다. 지난 13일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성진은 “(대중에게 잊히는 게) 불안할까 봐 군 생활하는 동안은 아예 관심을 끄고 살았는데, 나와보니 (분위기가) 뭔가 좀 이상했다. 그래서 의구심이 가득했었다”면서도 “사실 저희가 늘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진심은 통한다는 걸 많이 깨달았다”고 말했다. 도운은 “뭔가 우리답다는 생각을 했다”며 “저희가 계획한 대로 된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근데 군대에서 이런 관심을 받다니, 진짜 감사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거리와 방송에서 데이식스의 노래들이 울려 퍼지는 사이, 지난해 11월 원필을 마지막으로 모든 멤버가 제대하면서 데이식스의 제2막을 열 조건이 갖춰졌다. 데이식스는 4개월여의 준비를 끝내고 지난 18일 8번째 미니 앨범 ‘포에버’(Fourever)를 들고 나왔다. 완전체가 된 뒤 빠르게 컴백하게 된 이유를 묻자 원필은 “저희 의지가 너무 강했다. 무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고, (빨리 돌아오는 게)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성진은 “군대 생활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팬들, 멤버들과 함께 무대를 만드는 과정이 그리웠다. 앨범 전곡을 다 들어봤을 정도”라며 “다들 음악에 대한 허기가 있었던 것 같다”고 공감했다.
데이식스는 한국 음악계를 통틀어서도 독특한 그룹이다. 이들은 아이돌을 키워내는 대형 기획사 JYP 출신이다. 하지만 데뷔 이후 줄곧 홍대를 중심으로 라이브 활동에 집중했다. 무대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척하는 ‘핸드싱크’를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실력을 갈고닦았다. 처음엔 밴드인 척 하는 아이돌 아니냐는 시선이 있었지만 이내 의구심은 사라졌다. 데이식스는 믿고 듣는 밴드로 자리매김했다. ‘믿듣데’(믿고 듣는 데이식스)라는 수식어가 이들의 정체성을 알려준다.
준비 기간이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앨범 준비는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했다. 영케이는 “저희가 빠르게 곡 작업을 하는 건 2017년에 단련이 됐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이번에도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앨범은 데이식스에도 의미가 남다르다. 멤버 전원이 군대를 다녀온 뒤에 처음 내는 완전체 앨범이기도 하지만, 여섯 명으로 시작했던 데이식스가 네 명이 된 뒤의 첫 앨범이기도 해서다.
이번 앨범명 ‘포에버’는 멤버 4명을 뜻하는 숫자 4(four)와 영원(forever)을 합쳐 만들었다. 영케이는 “이번에 마침 마이데이도 4기”라며 “(여러 의미로) 네 명이 함께 영원을 부르는 느낌으로, 그런 바람을 가지고 노래하는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늘 그렇듯 이번 앨범도 전곡 크레딧에 멤버들이 이름을 올렸다.
타이틀곡 ‘웰컴 투 더 쇼’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손잡고 같이 서준 이들을 향해 보내는 세레나데다. “이것만큼은 맹세할게 / 내 전부를 다 바칠게”라고 노래하는 게 연인 사이의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지만, 동시에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영케이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신나는 노래를 생각하며 곡을 쓰기 시작했다. 곡의 bpm도 저희가 직접 뛰어보면서 뛰기 좋은 속도를 찾았다”며 “처음엔 ‘가수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쇼’로 생각하고 가사를 썼는데, 더 많은 사람이 이입해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됐으면 해서 사랑이란 감정을 주제로 가사를 바꿨다. 그렇게 무대를 인생에 비유하는 곡이 됐다”고 설명했다.
‘웰컴 투 더 쇼’는 현재의 데이식스가 가장 집약적으로 담긴 곡이기도 하다. 멤버들에게 ‘지금까지의 곡 중에 팀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이 뭐냐’고 물었더니 모두 ‘웰컴 투 더 쇼’를 꼽았다. 영케이는 “데이식스는 계속 살아가면서 변화한다. 그래서 현재의 데이식스를 가장 대표하는 곡은 ‘웰컴 투 더 쇼’”라며 “우리가 지금 가진 목소리와 에너지가 가장 잘 담겼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진 역시 “여태 해왔던 곡들 모두 소중하지만, 현시점에 와서 데이식스를 제일 잘 보여주는 곡은 ‘웰컴 투 더 쇼’가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데이식스의 노래가 뒤늦게 차트를 점령하며 사랑받은 이유가 뭐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에 원필은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가사가 많은 공감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며 “유행하는 말을 많이 쓰지도 않을뿐더러, 형(영케이)이 작사할 때도 중점을 두는 게 진심이다. 여기에 많이 공감하신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원필의 말처럼 데이식스의 곡을 보면 가사들이 일상적이고 직선적이면서도 재치 있는 표현들이 많이 담겨있다. 이번 앨범에 담긴 ‘널 제외한 나의 뇌’도 가사 일부가 제목이 됐다.
데이식스는 ‘늙지 않는 노래’를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영케이는 “저희가 밴드라 유리한 것도 있는 것 같다. 밴드 악기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언제 들어도 뒤처지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은 음악을 들려드릴 수 있는 것 같다”며 “‘예뻤어’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도 이렇게 6년이나 뒤에 들어줄 줄 누가 알았겠나(웃음). (저희 음악이) 이 세기에 길이길이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