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왕이 노인들을 초청해 잔치를 하는 양로연 또는 기로연(耆老宴)이 중요한 국가 행사였다. 국가 차원뿐 아니라 고을 단위로도 양로 잔치가 열렸다. 1519년 안동부사가 노인들을 초대해 잔치를 베푼 게 ‘화산양로연도’라는 그림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엔 양로연 때 60대부터 90대까지 연령대별로 몇 가지 음식을 대접하는 게 좋은지에 대한 지침까지 소개돼 있다. 오래 사는 사람들이 드물었던 시대의 풍경이다.
하지만 노인보다 아이가 더 귀한 요즘은 양로 잔치보다 돌잔치가 더 주목받고 있다. 지난 21일 충북 진천군 백곡면에선 돌을 맞은 아기를 위한 마을 돌잔치가 열렸다. 이 마을에서 3년 만에 태어난 귀한 아이여서 지방자치단체가 잔치를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골 마을 잔치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한 총리는 “마을 모두가 한마음이 돼 돌잔치를 연다는 소식에 꼭 참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총리가 공무로 돌잔치에 참석한 건 유례 드문 일이다. 지난달 27일 경남 통영시 사량면에서도 하모씨 자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마을 돌잔치가 열렸다.
지난 17일엔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과 신영숙 여성가족부 차관이 네쌍둥이의 돌을 축하하려고 경기 과천시 송모씨 집을 찾았다. 출생과 보육을 담당하는 차관들이 돌 축하 때문에 가정집을 방문한 것도 이례적이다.
4·10 총선 때 같이 치러지는 밀양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한 예비후보는 저출산 시대엔 돌잔치도 지자체가 지원해야 한다면서 최대 1000만원의 돌잔치 축하금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하나같이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실감나는 사례들이다. 이렇게 출생을 온 마을 사람들이 축하해주고, 아이의 성장 과정을 주변에서 관심 있게 지켜본다면 저출산 풍조를 깨뜨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조선시대 궁궐에서 양로연이 열렸던 것처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저출산 기조를 깨뜨리는 데 앞장선 가정을 격려하는 국가 차원의 돌잔치를 열면 어떨까.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