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대 마라톤서 일회용컵 최소 20만개 버려진다

입력 2024-03-22 04:06
수백 개의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물병이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2023서울마라톤’ 대회 길가에 버려져 있다. 지구닦는사람들 제공

직장인 고모(32)씨는 지난 9일 서울 성동구에서 열린 국민체육진흥협회 주최 ‘코리아오픈레이스’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하프코스를 달린 고씨는 약 21㎞를 주파하며 급수대 7개를 지나쳤다. 급수대마다 일회용 종이컵들이 대형 비닐봉투 여러 개에 가득 담겨 있었다.

통상 마라톤 급수대에 놓인 컵에는 한두 모금의 적은 양의 물이 담겨 있다. 대회 참가자가 달리면서 마시기 쉽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한 번에 2~3개의 컵을 가져가는 이들도 있다. 고씨는 21일 “뛰는 도중 갈증이 나서 충분한 양의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비치된 게 다 일회용 컵뿐이었다”며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대회 내내 한 컵의 물만 마셨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열린 ‘2024서울마라톤’도 상황은 비슷했다. 3만5000명이 참가해 서울 시내를 달렸는데, 직장인 이모(31)씨는 “급수대를 채운 일회용 컵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채워지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안 좋았다”고 지적했다.

마라톤의 계절이 돌아오면서 행사 때마다 일회용 컵이 과도하게 소비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매년 국내 3대 마라톤 대회에서만 버려지는 일회용 컵이 최소 20만개에 달한다.

지난해 11월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종이컵을 한 번 사용할 때마다 45.2g의 탄소가 배출된다. 승용차로 1㎞를 이동할 때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이 210g이다. 마라톤 참가자 1명이 대회에서 일회용 종이컵에 담긴 물을 약 다섯 번만 마셔도 자동차로 1㎞를 달린 것과 맞먹는 양의 탄소를 배출하게 되는 셈이다.

일부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일회용 컵 대신 다회용 컵을 쓰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황승용 지구닦는사람들 대표는 “급수대 1개만 다회용 컵으로 바꿔도 최소 2만개의 일회용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단체는 지난해 한 대규모 마라톤 대회 당시 급수대 하나를 맡아 다회용 컵에 물을 따라 제공했다. 이날 급수대에서 쓰인 다회용 컵만 2만3000여개였다. 단체는 이 컵들은 모두 수거해 전문업체에 맡겨 세척 후 재포장했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컵을 80번가량 다시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일회용 종이컵은 한 개에 10원가량이지만 다회용 컵은 세척 비용과 급수대 운영비까지 포함해 약 350원이 필요하다. 황 대표는 “급수대를 늘려 일회용과 다회용 중 선택하도록 하는 등의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