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5일 일요일, 여의도에 있었다. 출입처에서 일하다가 점심에 맞춰 인근 식당을 찾았다. 한 남자가 급히 식당으로 들어왔다. 주문한 밥이 나오기 전인지, 후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외모나 행색이 어렴풋이 떠오르지만 정확하지 않다. 혼자였는지, 여럿이었는지도 불확실하다. 하지만 그의 말만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는 종업원에게 자신을 제약사 직원으로 소개한 뒤 여의도공원에서 의사들이 집회를 하는데 따뜻한 물을 대량으로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면서 흰 김을 안개처럼 내뿜던 바깥의 큰 솥을 가리켰다.
그날 여의도공원에선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전국의사 궐기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주최 추산 2만명, 경찰 추산 1만명이 모였다고 당시 기사는 적고 있다. 기상청 기록에 따르면 그날 서울은 평균기온 영하 4.4도, 최저기온 영하 8.0도로 그 겨울 첫 최강 한파의 끝자락에 놓여 있었다.
의사 집회는 당시 기자의 출입처와 무관했다. 기자의 신경은 최장 기록을 경신하던 출입처의 다른 파업에 가 있었던 같다. 그럼에도 그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는 건 그 장면이 주는 부조리함의 강도 때문이다. 의사 집회에 나와 한파가 몰아치는 일요일 여의도에서 뜨거운 물을 구하러 뛰어다니던 제약사 직원의 처지가 쉬이 잊히지 않았다.
주지하다시피 얼마 전 위 상황을 떠올릴 일이 있었다. 지난 3일 여의도 의사 집회에 제약사 영업직원의 참석을 강요했다는 의혹이 온라인에 확산됐다. 대한의사협회는 바로 반박했다. 주수호 의협 언론홍보위원장은 글이 허위라며 작성자를 고소했다. 그는 회원의 강요가 밝혀지면 징계하겠다고 한 후 “개인 일탈을 전체 일인 것처럼 일반화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자. 돌연변이 한두 명 때문에 의사 전체가 매도당하는 건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전이지만, 의사를 향한 여론이 매서운 상황에서 의협 해명처럼 조직적 지시나 강요가 있었다고 보긴 힘들다. 10여 년 전 개인 경험이 더해지고, 일부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대도 의사 사회 전반의 분위기로 일반화하고 싶지도 않다. 전체로 자주 매도되는 직업군에 속한 입장에서 특정 집단이 어떻다고 평하거나 비하하는 말처럼 폭력적이고 해로운 건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의사를 전체로 보고, 악마화한다는 의사들의 불만을 종종 접한다. 전공의, 개원의 같은 신분에다 과·지역별로만 조합해도 수많은 집단이 생기는데 14만 의사를 묶어 악마화한다는 생각도 다른 방향의 일반화다. 실제 전공의가 빠진 상황에서 현장을 지키는 이들과 사태가 끝날 때까지 현장에 남겠다는 뇌혈관 학회 기사의 댓글은 악마화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반대로 의사를 전체로 묶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면, 그것은 위 기사 댓글에서도 알 수 있듯 의사가 환자를 버리고 의료 현장을 떠났다는 생각 때문이다. 세계의사회는 2012년 채택한 ‘의사 집단행동의 윤리적 의미에 관한 성명’에서 “집단행동에 들어간다면 그 기간 대중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필수·응급 의료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의협 간부들의 무분별한 발언도 의사를 전체로 묶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어렵게 만든다. 2013년 여의도에서 자기 목을 10㎝ 넘게 자해했던 당시 의협 회장은 의대 정원 배분이 확정된 20일 SNS에 “의사들은 이 땅에서든 타국에서든 살 길을 찾아갈 거다. 죽어가는 건 국민이다. 의사들이 애통한 마음만 버린다면, 슬퍼할 일이 아니다”고 적었다. 이를 본 이들은 그가 국민과 한국 의료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생각할까.
김현길 온라인뉴스부 차장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