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무렵, 처음으로 남동생과 영화를 봤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을 맡은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이라는 영화였다. 동생과 나는 종로의 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만났다. 그때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충당했으므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에게 의젓한 누나 노릇을 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경양식 돈가스’를 사주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이 얼마 없었다. 월세 내기도 빠듯했다. 우리는 지금도 그 얘길 꺼내면서 웃는다.
동생은 블루칼라 노동자다. 경기 부천의 한 화학 공장에서 근무한다. 전화했을 때 동생은 야간 근무하기 전에 짬을 내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야근 포함하면 근로 시간은 총 12시간 정도 되는데, 코로나로 매출이 감소했을 때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동생이 하는 일이 궁금해서 물었더니, 원료를 절단하는 기계를 관리한다고 알려주었다. 첨가물을 배합한 원료가 100도가 넘는 탱크를 통과하면 젤리처럼 말랑해진다. 그 원료를 밥알만 한 크기로 자르는 일이라고 했다. 원료는 보통 휴대전화 액정에 붙이는 필름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원료는 온도에 민감해서 작업장 내에서는 환기할 수 없단다. 내가 걱정을 늘어놓으니 동생은 보호장구도 착용하고 컨트롤 룸 안에서 쉬니까 염려 말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 기억 속에서 동생은 극장 앞에서 앳된 얼굴로 “누나, 여기!” 하면서 손을 흔드는 것만 같은데,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 얼마 전 조장이 모터로 빨려 들어간 에어호스를 잡아 빼려다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욱 안타깝다. 비단 동생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터이다. 여전히 산업 현장에서 안전사고 소식이 잇따른다. 누구나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고 안전한 일터에서 일하길 바라는 희망은 아직도 요원한 것일까.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