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덕연 주가 조작 사태와 영풍제지 미수금 사태. 지난해 폭풍우같이 키움증권을 휩쓸고 간 이슈들이다. 23년 차에 접어든 2000년생 키움증권의 설립 이후 최대 위기였다. 사태 수습이 필요한 순간 키움증권은 리더십을 교체했다. 엄주성 키움증권 사장은 지난 18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키움증권이 더 커졌을 때 터졌으면 회생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라며 “10년 뒤엔 2023년의 일을 키움의 성장 배경으로 회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장기에 미리 약을 처방받고 ‘예술적 리스크 관리’를 완성하겠다는 포부다.
키움증권은 증권업계에서 개인 투자자를 상대로 하는 리테일 부문 최강자로 불린다. 주식 거래 수수료 등 브로커리지(위탁매매) 비중이 전체 수익의 70%를 차지한다. 성장 전략을 짤 때도 ‘개인투자자의 금융투자플랫폼’이라는 정체성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엄 사장은 “온라인 금융상품도 가장 직관적이고 편리하고 저렴하게 개인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한다”며 “모든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토대는 인공지능(AI)이 쌓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AI는 질문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는 역할”이라며 “투자자들이 온라인 자산관리에 관심을 두는 시점에 대비해 AI 활용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만난사람=권기석 경제부장
-어수선한 시기에 키움증권을 이끌게 됐다. 리스크 관리를 강조하고 있다고.
“수익 부서도 자기절제를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자기자본투자(PI)로 운용도 해봤기 때문에 ‘돈이 된다고 다 하지 말자’는 주의다. 돈의 성격과 지켜야 할 규제, 도덕성도 따져보고 한다. 그동안 시스템을 보면 돈을 버는 사람과 법·규정을 보는 사람이 분리돼 있었다. 하지만 일을 하는 사람이 미리 리스크를 체크하면 선행적으로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어느 순간 우리를 비롯해 증권사들이 이런 자기절제에 둔감해진 것 같다. 키움증권은 수익을 낼 때도 자기절제를 하는 방향으로 문화와 제도를 바꾸고 있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현업에서 ‘리스크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부문장 회의 때마다 ‘얼마를 벌었다’는 물론 그 활동에 대한 체크 사항이 뭐가 있느냐를 파악한다. 예를 들어 고객에게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를 많이 팔았다면 그만큼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담당 부문장은 ELB를 누구한테 팔았는지, 분산했는지, 고객에게 충분히 설명했는지 등을 스스로 확인해서 설명해야 한다. 이전에는 리스크 관리나 컴플라이언스(준법) 부문에서 확인했지만 지금은 담당자가 직접 확인하게 한다.”
-키움증권은 브로커리지가 강점인 회사다. 미래 먹거리 고민은 없나.
“‘개인투자자 금융투자플랫폼’이라는 정체성은 늘 지향해야 한다. 놓치지 않아야 할 최우선 가치다. 그 외에 세일즈앤트레이딩(S&T)이나 기업금융(IB)의 수익 비중은 30% 정도다. 리테일 브로커리지라는 주 수익원이 없고 자본 사이즈가 크다면 그 자본을 활용한 비즈니스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키움은 굳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우리는 70%가 브로커리지라 추가 사업으로는 좋은 열매만 따 먹으면 된다. 주식발행시장(ECM)에서는 좀 더 여력이 있다고 보고 성과를 높이려고 한다.”
-브로커리지를 더 강화할 방안은.
“온라인 금융투자상품에는 아직 지배적인 사업자가 없다. 스스로 금융상품을 찾아보는 투자자들이 많지 않아서다. 돈 있는 자산가들은 프라이빗뱅커(PB)가 상품을 추천해준다. 제 경우만 해도 어릴 때 국민연금과 개인연금, 회사 퇴직연금으로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누군가 말해줬더라면 무리해서 위험 투자를 하지 않았을 거다. 안전한 저축으로 꾸준히 불려 나갈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이 블록 쌓듯이 편하게 금융상품을 매수하고 자산을 형성할 수 있도록 키움에서 토대를 만들고 싶다.”
-개인이 모든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의민가.
“그렇다. 챗GPT를 활용한 투자 조언이나 자산관리를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는 퇴직연금이나 개인형 퇴직연금(IRP), 연금저축이 다 들어간다. 금융상품을 매년 4~5% 수익률로 20년을 쌓으면 복리로 300%는 수익을 낼 것이다. 그중에 일부만 주식으로 갖고 있으면 된다.”
-이미 일부 금융사들이 AI를 접목한 금융 서비스를 내놓았다.
“먼저 시작한 곳은 많다. 다행인 건 이렇다 할 정도의 ‘킬러앱’이 없다. 질문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AI는 문제에 대한 솔루션이다. 문제가 뭔지 알아야 솔루션도 줄 수 있다. 고객의 생각과 결부해야 상승 작용이 있는 거다. 지금은 질문이 없는 사람에게 답을 주는 실정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질문하는 시점이 올 것이다. 그때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지난 1월 인공지능전환(AIX)팀을 만들었다. AI 관련 업무를 리스트업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금융상품 투자 플랫폼에 AI를 적용하는 걸 1순위로 생각한다. 서비스가 나오려면 1년은 걸릴 것 같다.”
-시장 참여자로서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제언한다면.
“투자자로선 세금 문제가 중요하다. 보통 배당주는 부자들이 많이 투자한다. 분리과세만 해줘도 투자자층이 넓어지리라고 본다.”
-2026년까지 주주환원율을 30% 이상으로 유지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30%였지만 3년 후엔 더 높여서 말씀드리게 될 거다. 40%가 될지 50%가 될지는 모르지만 주주환원율을 높이는 방향성은 분명하다.”
정리=김준희 기자 zuni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