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쏘아올린 ‘ELS 자율배상’… 타 은행들 곤혹

입력 2024-03-21 04:04
게티이미지뱅크

금융 당국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자율배상 압박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우리은행이 선제적으로 자율배상에 나선다. 당장 자율배상에 착수하기 여의치 않은 다른 시중은행들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판매 규모가 우리은행보다 큰 만큼 배상액 추정 등 내부검토에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어서다.

20일 은행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오는 22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홍콩 H지수 ELS 만기 도래 일정과 손실 예상 규모 등을 보고한 뒤 자율배상에 관한 사항을 회의에 부칠 예정이다. 이사회에서 심의 및 결의가 마무리되면 구체적인 배상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의 총 배상액 규모는 최대 100억원일 것으로 예상된다. 선제적으로 자율배상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H지수 ELS 판매액이 413억원으로 다른 은행들에 비해 비교적 적을 뿐 아니라 만기가 도래하지 않아 현재까지 확정된 손실액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시중은행들은 아직 배상안 관련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이날 하나은행(20일)을 시작으로 KB국민은행·신한은행(21일), NH농협은행(28일) 등 줄줄이 정기 이사회가 예정돼있지만 우리은행과 달리 H지수 ELS 자율배상안을 당장 논의할 단계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판매 규모가 조 단위로 큰 만큼 내부 검토 작업에 시간이 걸리고, 배임 문제 등 법률 검토도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H지수 ELS 판매액이 8조1972억원으로 가장 많고, 신한은행(2조3701억원) 농협은행(2조1310억원) 하나은행(2조1183억원)도 수조원대에 이른다. 금융감독원 기준에 따를 경우 배상액이 수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음 달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결과가 나와야 자율배상안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다만 우리은행이 발 빠르게 자율배상 깃발을 든 만큼 관련 시계가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늦어도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까지 어떤 형태로든 입장 표명이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제기된다. 정기 주주총회가 끝난 뒤 추후 개최될 임시 이사회에서 관련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하나은행은 이날 “오는 27일 임시 이사회를 개최해 H지수 ELS 자율배상에 대한 논의를 거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단 은행들은 금감원이 은행권 불완전판매의 원흉으로 지목한 성과평가지표(KPI)를 손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직원의 성과급과 인사 등에 반영되는 KPI를 손질해 고위험 상품에 대한 과도한 영업과 이에 따른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하나은행은 올해 상반기부터 ‘판매채널별 특정 고위험 상품 집중판매 위험관리’ 항목을 KPI에 추가하기로 했다. 국민은행은 펀드와 신탁 신규 판매금액에서 원금 손실이 있는 구조화 상품 판매 비중이 일정 수치를 넘지 않도록 감점 기준을 만들었다. 우리은행도 영업점 프라이빗뱅커(PB)가 고객 포트폴리오에서 중·저위험 상품 비중을 높이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도록 KPI를 보완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