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청 들어본 적 있어요?”
지난 14일 서울 관악구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만난 윤민석(가명·47)씨가 물었다. 그는 2019년 조현병 증세가 악화돼 3개월간 폐쇄병동에 입원했던 경험이 있다. 머리를 망치로 툭 맞는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지인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환청과 망상, 조현병의 증상이었다. 처음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증상이 나아졌다 심해지기를 반복하며 열 번쯤 폐쇄병동을 오갔다. 그가 병을 인지하고 회복으로 나아가게 된 건 2020년 ‘동료지원서비스’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다.
동료지원서비스는 정신적 어려움으로부터 회복을 경험한 당사자가 동료지원가가 돼 현재 어려움을 겪는 다른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제도다. 상담뿐 아니라 함께 식사를 하고 산책도 한다. 말그대로 동료가 돼주는 것이다. 윤씨는 “환청 같은 정신질환 증상은 겪어보지 못한 이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며 “그러나 같은 아픔을 겪었던 동료지원가에게선 온전히 이해받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 일상을 나누고 공감을 받던 경험은 윤씨를 변화시켰다. 그는 2022년 말 서울시 자립센터 연말 성과보고회에서 센터를 대표해 당사자 연구 발표를 맡았다. 이듬해엔 당사자 연구 간사직도 맡았다. 맡은 역할이 늘어갈수록 도전할 용기도 생겨났다. 윤씨는 지난해 동료지원가 양성과정에 참여해 서비스 이용자에서 지원가로 거듭났다. 그는 “동료지원가가 돼보니 내담자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다”며 “위로받았던 경험으로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레 끌어내고 싶다”고 했다.
동료지원가는 의료진이 미처 관심 갖지 못한 이용자의 세세한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이용자는 당사자 간 만남으로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고 진정한 회복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용자 정종현(40)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8년이란 긴 시간을 병원에서 지낸 그에게 퇴원 후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함께 사는 누나뿐이었다. 정씨는 “의사와의 상담도 한계가 있고, 누나는 공황발작 같은 나의 증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며 “동료지원가에게는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했던 증상을 말하고 이해받다 보니 마음에 진 응어리가 풀리면서 속이 시원했다”고 말했다.
불안 증세가 심해 남들 앞에 서는 건 엄두조차 못 냈던 정씨는 이제 적극적으로 당사자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그는 현재 동료지원서비스뿐 아니라 당사자 합창단과 야학도 병행하고 있다. 야학에서 만난 사람과 연애도 시작했다면서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낀 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정씨는 “이해받는 경험은 사람들과 터놓고 지낼 수 있게 했고 나 자신을 변하게 했다”며 “이제는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증세를 밝히고 양해를 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동료지원서비스는 지원가에겐 책임감을, 이용자에겐 안정감을 주는 ‘당사자 간 상생’이라는 점에서 효과적이지만 당사자들에게 아직 홍보가 부족한 실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9~10월 정신장애인 422명과 가족 17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신장애인 가족돌봄 및 지역사회 지지체계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78.3%는 ‘동료지원서비스를 받아본 적 없다’고 답했다. 이용하지 않은 이유로는 ‘서비스가 존재하는지 몰라서’가 가장 많은 48.2%를 차지했다.
서비스를 알아도 지방자치단체별로 운영 방식과 규모가 달라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정신장애에 대한 지원은 국내 다른 장애영역과 달리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별로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현재 단 3곳의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에서만 동료지원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인천에 사는 동료지원가 김윤정(가명·34)씨는 서울 관악구에 있는 센터로 출근한다. 김씨는 “과거 인천에서 치료받을 때 자조모임이 있다고 해서 참여하고 싶었지만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알 길이 없어 그나마 정보가 있던 서울로 다녔다”며 “동료지원가 역시 인천은 아예 안 뽑는 곳도 많아 서울로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은 동료지원가를 ‘양질의 일자리’라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정신장애인은 일반적인 일자리를 구해도 지속적인 치료와 사회적 편견으로 유지가 쉽지 않은 현실”이라며 “그러나 동료지원가는 내 병력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고 내담자를 도우며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주변에 일하고 싶은 당사자들이 많은데 자리가 마땅치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쉬게 돼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며 “정신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지원이 늘어나 집에서 가까운 센터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료지원가들은 이 일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키며 미래를 꿈꾼다고 했다. 5년 차 동료지원가 한진영(가명·31)씨는 “내담자의 증상을 이해하기 위해 정신질환을 공부하고, 적합한 프로그램을 찾아본다”며 “계속 공부해 나가면서 나만의 강점을 기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씨는 “이런 노력으로 내담자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싶다”며 “나도 회복해봤고 내가 맡았던 내담자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며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다. 그걸 선물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최근 위기 상황을 겪은 내담자를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그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한씨의 모습은 전문성과 자부심을 갖춘 영락없는 프로였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