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글로벌 공급망 갈등이 한국엔 탈(脫)중국 기업들을 유치할 절호의 기회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에 진출해 있는 800여개 미국 기업이 가입한 암참(주한미국상공회의소)이 그제 대통령실에 전달한 ‘한국의 글로벌 기업 아시아·태평양 지역 거점 유치 전략’ 보고서는 단순 국가 경제 동향을 전하는 의미를 넘어 정책 제안까지 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회원사들을 상대로 ‘아·태 본부를 두고 싶은 국가’가 어디인지 조사한 결과 한국이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깝고 전력·IT 인프라·문화·교육 여건 등이 뛰어난 곳으로 평가됐다. 보고서는 다만 한국이 아·태 본부 자격을 갖추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규제 개혁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홍콩·싱가포르 등에 비해 훨씬 무거운 형의 중대재해처벌법이나 낮은 노동 유연성, 주 52시간 제도 등이 외국 기업 진출의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이런 해묵은 규제들은 역대 정부가 손톱 밑 가시, 규제 전봇대 등의 표현을 써가며 혁파를 시도했지만 성과가 미미했던 게 사실이다. 특히 최고세율이 24%에 달하는 법인세의 국제적 수준으로의 인하는 대기업 특혜와 부자 감세 논리에 막혀 있다. 아·태 본부를 둔 기업에 법인세를 5~10% 수준으로 깎아주는 싱가포르에 외국기업 아·태본부가 5000개에 달하고 한국엔 100개 미만인 이유는 명백하다. 암참이 1953년 전쟁의 폐허 속에 있던 한국에 설립된 이래 처음으로 선의의 정책 보고서를 낸 건 이번이 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한국이 재도약할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 건지 모른다. 아·태본부 국가로의 도약은 지난해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를 만회하고도 남는 프로젝트다. 그동안 ‘동북아 금융중심’을 위해 쏟아 부은 인프라와 결합해 금융 선진화까지도 유도하는 시너지 창출의 기회다. 그 전제 조건인 규제 혁파를 위해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모처럼 협력할 명분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