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한 달이 됐다. 전국에서 1만2000명이 사직서를 냈다. 93%라는 위압적 참여율을 뒤집어보면, 절대다수에 동참하지 않은 7%, 약 1000명의 전공의가 한 달째 묵묵히 병원을 지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론에 익명으로 소개되는 수준이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온다. “명분이 뚜렷한, 필요한 파업이라면 참여했을 거예요.” “결국 의사 이권을 위한 건데, 비전이 뚜렷하지 않으니 ‘무조건 백지화’ 말고는 대안도 없는 것 같아요.” “병원에 남겨질 환자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는 게… 집단 이기주의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했습니다.”
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의사들의 이번 파업은 명분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증원 반대의 최대 논리인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은 의사 집단 내부에서도 반박 목소리가 나왔다. 주영수 국립의료원장은 17일 회견에서 “병원들은 현장에서 의사가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공공의료기관장끼리 회의하면 의대 증원에 이견이 없다. 2000명 증원은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정부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정책”이라 했다. 명분이 약하면 말이 거칠어지는 법이라 의사협회의 막말은 유독 많았다. “정부가 의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어리석다.”
이번 사태를 ‘몇 명이나 증원하느냐’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이제 본질을 벗어났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정부 정책이 특정 집단의 힘에 다시 좌초하느냐, 그 내부에서도 취약하다 지적하는 허술한 명분 앞에 결국 후퇴할 것이냐의 문제가 됐다. 전공의가 나서고 의대 교수가 뒤따르는 똑같은 패턴에 번번이 물러섰던 과거가 반복된다면, 앞으로 등장할 어떤 정부도 의료 정책을 제대로 펼 수 없게 된다. 매번 의사 눈치 보며 수립하는 정책이 국민의 건강을 위한 최선의 것일 리 만무하다. 환자의 생명을 볼모 삼아 벌이는 집단행동이 국가 의료정책을 좌지우지해온 악습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이제 한 달째를 맞아 의사 파업의 한 고비에 이르렀다. 비상진료대책의 효과로 심각한 의료대란 없이 버티던 시간이 점점 더 힘든 국면을 향해 가고 있다.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양비론과 정부 책임론이 슬슬 고개를 들 시점이다. 이럴 때일수록 원칙과 인내가 우선돼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천명했던 대로 의대 정원 배정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불법 행위에 대한 대응도 차질없이 절차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흔들리지 않아야 국민도 인내하며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