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에는 미인도에서부터 양반이 쓰던 갓까지 19세기 조선의 삶을 보여주는 민속품이 무려 3000여점 있다. 고종의 외교고문 묄렌도르프도 당시 박물관의 부탁을 받고 민속품을 수집해 보냈다. 그런데 이 유물 중에는 함부르크 출신 유물 상인 쟁어(H. Sanger)로부터 구입한 것이 1600점이 넘는다. 종류도 회화, 거문고, 장고, 비녀, 망건 등을 망라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최근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 ‘곽분양행락도(사진)’ 병풍을 보존처리한 뒤 언론에 공개했다. 15개월간의 보존 작업을 거친 이 작품은 애초 병풍 틀이 뒤틀려 뜯긴 상태였다. 그림 부분만 낱장으로 보관되던 곽분양행락도는 재단의 지원으로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의 보존 처리 끝에 어엿한 8폭 병풍 본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곽분양행락도는 당나라 때 안녹산의 난을 진압하는 등 거듭 승리를 거둔 끝에 분양(汾陽)의 군왕으로 봉해진 공신 곽자의가 말년에 호화로운 저택에서 자손들과 연회를 즐기는 모습을 담은 것으로 조선 후기에 길상의 바람을 담은 그림 소재로 인기를 끌었다.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 ‘곽분양행락도’는 작가는 알 수 없지만 구름과 폭포, 인물 등의 묘사가 탁월해 화원 출신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런데 이 그림도 1902년 유물상인 쟁어로부터 박물관이 구입한 것이다. 병풍에 판매자 이름 쟁어가 선명하다. 그런데 쟁어는 저 많은 조선의 유물을 어떻게 구입했을까. 조선으로 직접 왔을까.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단 이사장은 19일 “최근 조사에서 쟁어가 일본에 있던 독일협회에 소속된 것으로 파악이 됐다. 일본 지사를 통해 조선의 유물을 구입해 실어왔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말했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